대상을 향한 그윽한 애정 이면에 깃든 비애의 정서
2024년 01월 24일(수) 12:25
황형철 시인 세번재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 펴내
“4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펴냈습니다. 다른 때보다 이번에는 퇴고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요. 두 번째 시집하고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이 무겁게 저를 짓눌렀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스스로 작품이 만족스럽지 못해 더 퇴고를 열심히 한 측면도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시인의일요일)를 펴낸 황형철 시인은 밀어두었던 숙제를 끝낸 것처럼 보였다.

모두 50여 편의 작품이 수록된 시집은 특유의 서정과 울림을 선사한다. 그만큼 시를 풀어내는 심상이 애잔하면서도 담백하다는 방증일 터다.

전체적으로 시는 자연, 역사, 일상 등 삶의 다양한 부분을 노래하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역사를 향한 마음, 일상을 대면하는 부분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황 시인은 “평소에 자연의 순환, 질서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며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생명이나 순환 등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제주’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시인은 몇 해 전 제주에 빠져들면서 그곳의 자연과 역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지난 2015년 가족들과 한달 살기를 하면서 진짜 제주를 보게 됐다”는 그는 “제주에 대한 관심이 자연, 사람, 4·3이라는 역사로 전이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4·3은 5·18, 그리고 미안마 등으로 연결된다”며 “시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도 있는 만큼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품집에는 다채로운 소재를 형상화한 작품이 많지만, 시인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풍경을 서정화한 시들이다. 사물에 대한 진득한 애정은 현장이 주는 생동감과 아울러 깊은 사유를 선사한다.

황형철 시인
“삼백오십 살쯤 됐다는 화엄사 홍매에 주말 인파 몰렸다는데 한눈에 봐도 우아한 자태에 가 보고 싶은 속내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동백이 피었을까 제일 궁금스럽다// 벚꽃이 활짝 전농로나 녹산로 소식은 심심찮게 오고 오동도나 선운사 같은 전국적 명소도 있지만 비할 게 아니고// 동백은 향기가 없어 빛으로 새를 불러 모은다지// (중략)// 남쪽 섬에서 연락이 오나 안 오나 빨갛게 속을 태우고 있다…”

위 시 ‘동백이 피었나 안 피었나 궁금은 하고’는 화엄사 홍매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오동도나 선운사도 아닌, 누추한 뜰을 배경으로 피어있을지 모를 동백을 그리는 마음이 그려진다. 대상을 향한 그윽한 애정 이면에 어떤 비애 같은 정서가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황형철 시인은 아름답고 지극하고 속 깊은 서정을 이렇게 풍부하게 건네주었다. 최근 우리 시단이 거둔 일대 수확이다”고 평한다.

한편 황 시인은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바람의 겨를’, ‘사이도 좋게 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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