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이웃사촌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1월 22일(월) 07:00
이사 온 지 3년이 되었지만 특별하게 아는 이웃이 없다. 아침이면 나갔다 저녁이면 돌아오니 딱히 만날 기회도 없을뿐더러 생활에 불편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러 승강기를 같이 타기도 하지만 짧은 목례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다. 혹시 어린아이거나 강아지라도 안고 있는 경우엔 좀 다르긴 하다. 그럴 때면 공연히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호들갑스러워지곤 한다. ‘아유, 예뻐라’ 소리를 연발하기도 하고, 굳이 몇 살인지를 물어가며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저렇듯 여린 것들 속에는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앞에선 누구라도 마음을 놓게 되니 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5층까지 있고 우리 라인에는 총 30가구가 살고 있다. 옛날 같으면 한 마을이고 한 골목인 셈이다. 그때 같으면 어느 집에 누가 살고 무슨 일이 있는지 훤히 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두 철옹성이다. 문이 닫히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제각기 자기만의 공간 속에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이웃사촌도 옛말이나 다름없다. 이웃도 사촌도 먼 데에 있을 뿐 차를 타고 나가거나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골목(한 라인) 사람이라도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 목인사라도 더 나누게 된 이웃이 생겼다. 나야 그럴 일이 없지만 남편은 밖에 서성거리는 일이 잦은 사람이다. 밤이건 낮이건 가리지 않는다. 몇 번씩을 거듭하면서도 싫증 내는 일도 없다.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한결같은 마음이다. 간혹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지도 않겠지만 아직 모르쇠로 일관할 모양이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해온 몸이니 끊으려야 끊을 수도 없을 거다.

하여튼, 밖에 나가 한참을 서성이다 오는 그가 연기만 내뿜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간 김에 음식쓰레기도 버리고 분리수거도 하고 온다. 흡연의 대가치고 합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안의 배출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이참 저참 나가게 되는 남편은 이런저런 ‘소식’들을 물고 오기도 한다. 몇 호 사는 누구는 무슨 일을 하고 살고, 어떤 취미를 갖고 있으며,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마치 빨래터에 다녀온 아낙네처럼 종알종알 듣고 온 것들을 내놓는 것이다. 그 참에 나도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엊그제 이사 온 8층 남자는 전기공인데, 낚시가 취미여서 일하는 시간 빼고는 대부분을 낚시터에서 보낸다. 그래서 그의 차에는 항상 낚시도구는 물론이고 캠핑 장비까지 실려 있다는 것이다. 5층 아저씨는 인력관리소를 운영하는데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업체를 알선하고, 또 업체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공급한다. 얼마 전엔 카페에 한 청년을 소개했는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그거 수습하느라고 스트레스깨나 받았다고….

13층 여자가 항상 개를 안고 다니는 이유도 알았다. 그녀의 품에는 볼 때마다 개가 안겨 있었는데 좀 유별나다 싶긴 했다. 그래도 그러나보다 했다. 나 역시 오랜 세월 개와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번 찰떡처럼 붙어 있지는 않은데, 저 끔찍한 사랑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번에 그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집에서는 절대로 배설을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말을 듣자 새삼 그들의 존재가 가여워졌다. 삶에는 늘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어쩔 수 없음을 그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후여서 그런지 유독 그들이 눈에 띄었다. 분리수거장 앞 키 크고 빼빼 마른 남자가 담배를 물고 서 있거나, 낚시도구 같은 것을 차에 싣는 남자가 있으면 속으로 그 사람이겠구나 추측해보곤 했다. 어느 날 남편과 외출했다 돌아오면서부터는 나도 정식으로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은 적어둬야 할 것 같다. 늘 무심한 듯 땅바닥을 향하던 마음이 조금 긴장하게 되더라는 것, 이제 ‘익명의 자유’는 물 건너갔구나 싶은데 그 자리에 새로운 호기심이 생긴 것, 그러면서 비로소 이 골목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각성하는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층층이 모여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득 애틋하게 와닿았다. 이제야 각각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그런데 저건 뭐지? 이사용 사다리차가 우리집을 지나 높게 뻗어 있다. 세어보니 13층. 아, 오늘 그녀가 떠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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