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3년 12월 08일(금) 00:00 가가
내 자신을 위해서,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 넉넉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 많은 노력을 한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어 내면에서 작용한 것인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회와 상황과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일하고 더 공부하고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기 자신이 하는 일과 학습과 분주함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길 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쩔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현실인지 아니면,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며 실현해 가려는 존재의 당연함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삶을 위한 노력이 맞거나 틀리거나 옳거나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만을 위해 ‘너’라는 존재인 다른 사람이 배제되는 현실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관계는 상호적 관계이지 일방적이고 적대적 관계로는 상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차별과 자연 파괴와 생명 경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상호성을 인정하지 않고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일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는 그 관계가 깨지는 것이 결말이고, 어느 한 쪽은 없어지거나 파괴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의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고, 그래서 그 얻어지는 것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삶을 영위하면서 있어야 할 것들이 충분하게 갖추어져 있을 때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의 만족을 채워주는 것이 외적으로 충분하다 해서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혹자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이기적인 삶이 팽배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 존재인 우리는 결국에는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나’로 시작하면서 ‘너’라는 다른 사람과 관계될 수밖에 없고, 그 관계는 역시 상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너’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사랑·나눔·봉사·희생이라는 단어를 내 자신에게 이입해보면,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온전히 내어놓는 사랑·나눔·봉사·희생은 타인을 향하지 않고 박탈당하는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온전히 나를 향하고 있다. 내 소중한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었을 때 행복과 만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인 것처럼 말이다. 경쟁과 투쟁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월감과 교만함이 극을 향하는 이들에게 사랑·나눔·봉사·희생은 한낱 쓸데없는 일이며 시간 낭비이고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나눔·봉사·희생을 실천하는데 굼뜨고 미적거리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으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움직이지 않으니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태오복음 7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신앙인들에게 실천하기가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세상은 무심한 권력에 의해 정의가 무참히 짓밟혔고 선과 윤리의 질서는 새로운 절대자로 등장한 돈이라는 ‘맘몬’(mammon)으로 무너져내렸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차별받으며 자연 파괴처럼 무너질 것은 자명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가? 사랑·나눔·봉사·희생은 ‘너’라는 타자를 향한 ‘나’의 실천이지만 결국엔 ‘나’를 위한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올 한 해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에게 도움이 됐는지 고민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자.
사랑·나눔·봉사·희생이라는 단어를 내 자신에게 이입해보면,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온전히 내어놓는 사랑·나눔·봉사·희생은 타인을 향하지 않고 박탈당하는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온전히 나를 향하고 있다. 내 소중한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었을 때 행복과 만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인 것처럼 말이다. 경쟁과 투쟁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월감과 교만함이 극을 향하는 이들에게 사랑·나눔·봉사·희생은 한낱 쓸데없는 일이며 시간 낭비이고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나눔·봉사·희생을 실천하는데 굼뜨고 미적거리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으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움직이지 않으니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태오복음 7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신앙인들에게 실천하기가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세상은 무심한 권력에 의해 정의가 무참히 짓밟혔고 선과 윤리의 질서는 새로운 절대자로 등장한 돈이라는 ‘맘몬’(mammon)으로 무너져내렸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차별받으며 자연 파괴처럼 무너질 것은 자명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가? 사랑·나눔·봉사·희생은 ‘너’라는 타자를 향한 ‘나’의 실천이지만 결국엔 ‘나’를 위한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올 한 해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에게 도움이 됐는지 고민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