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열정 밖에 없는데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3년 06월 29일(목) 22:00
“스님, 알바도 여럿 뛰면서 정말 열심히 사는데... 요번에 창업 투자 지원 대상에서 탈락되었어요. 돈이 없으니 힘드네요.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요?” 나의 대학생 친구가 맥 빠진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열정에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조화 열정으로 특정한 활동에 열정을 가지면서도 거기에만 집착하지 않는 상태이며, 둘째, 강박 열정은 오로지 특정 활동의 열정을 통해서만 쾌락, 자아 존중감, 삶의 의미 등을 추구하려는 상태이다. 만약 이 활동이 무너지면 상실감과 절망이 몰려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강박 열정이 열정의 민낯이라면, 조화 열정은 어떻게든 열정을 통제하고 싶은 인간의 희망 사항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나의 대학생 친구는 강박 열정이 벽에 부딪힌 상황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 강박 열정을 조화 열정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그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손쉬운 일일까?

그래도 이 친구는 깨질 열정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꽤 오래전 일이다. 이십대 중반의 젊은 여성과 차담을 한 적 있다. 지금 일이 그렇게 싫지 않고 재미도 있다고 했다. 본인 나이에 걸맞게 도전 의식을 가지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뭔가를 하고 싶긴 한데 그 뭔가가 뭔지 몰라서 헤메고 있었다.

이 젊은 여성과 대화하면서, 나는 이 여성의 관념적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이 사는 곳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인데 어찌 된 셈인지 이 여성의 열정은 머릿속에 기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학습되고 주입된 열정이었다. “열정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법문을 준비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에 법문한 동영상을 찾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피부에 와닿는 사실이 있다. 202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말도 빠르고 하이톤이었다. 반면 그 이후로는 말도 느리고 차분하다. 아무래도 황천길을 미리 한번 예행 연습 삼아 다녀온 뒤로, 한풀 꺾인 모양이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라 지금껏 생각했었다. 하지만 열의에 차서 법문하던 불과 몇 년 전 내 모습을 보노라면 ‘저게 열정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열정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다. 잠시나마 나도 모르는 열정이 내 안에서 불타오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열정의 여러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몰락한 열정, 알맹이라곤 없는 보여 주기식의 열정,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열정…. 열정을 조화롭게 다스리기도 힘들지만,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도 없는 열정을 찾아 헤메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도 언젠가는 식게 되어 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 있을 수 없듯, 이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모든 재는 뜨겁게 불타오르던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열정을 자각하는 순간, 이미 열정의 운명적인 몰락 역시 시작된다.

청춘은 열정을 먹고 산다. 그래서 나의 대학생 친구는 자신의 열정에 끌려 다니다가 그만 기운이 소진되고 말았다. 뜨거운 열정에 환호하려면, 차갑게 식은 열정의 냉랭함 역시 감수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젊은 여성은 마치 백화점에서 신상품 고르듯 열정을 고른다. 그러나 열정은 몇 푼의 돈으로 살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이제 60대에 들어선 나는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의 뜨거움과 열정이 지나간 자리의 황량함을 모두 겪어 보았다. 그래서 차갑게 식은 열정의 스산함이 싫어서 다시 또 뭔가에 자신을 내던지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산불이 지나간 잿더미에서도 다시 싹은 트는 법. 열정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도 또다시 새로운 열정은 피어 오른다. 설령 뜨겁게 다가오는 열정이 언젠가 휑하고 황량한 바람만 남기고 떠날지라도, 이 또한 소중한 인연이다.

열정을 조화롭게 다스린다는 것은 마치 보일러의 온도를 조절하듯 적당한 세기로 열정을 유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열정에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화려함과 치열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줌 재가 되어 차갑게 식어 버린 허망함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둘을 다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열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열정은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소유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말했다. “당신의 열정을 지배하라. 그렇지 않으면 열정이 당신을 지배할 것이다.” 나는 말한다. “열정을 사랑하라. 그러면 열정은 당신의 삶이 될 것이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