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되지 않게
2018년 07월 09일(월) 00:00 가가
[정봉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날마다 새롭게 탄생하는 신조어들을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지독한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일까. 타인에 대한 존중은 물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실종된 느낌이다. 진지충, 설명충, 맘충···. 언어 표현의 수위가 위험으로 치닫고 있다.
‘맘충’은 언제부턴가 혐오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에도 나온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독박 육아’에 시달리던 젊은 엄마가 오래간만에 커피 한 잔 마시러 유모차를 끌고 나섰다가 하루아침에 맘충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그렸다. 혐오의 표적 집단으로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는 흔히 언급되지만 아이 엄마를 표적 집단으로 설정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아이 엄마의 이미지가 예의 없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기피 대상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혐오는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별 근거가 없다고 무시해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오랜 기간 인종 차별이 통념이 되고 이데올로기화 되면서 단단한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것과 같다.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지적당할까 두렵고 자기도 모르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어 위축된다고.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해, 개념녀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 단속하는 것이야말로 혐오의 부정적 효과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면 과연 존엄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듣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민감하냐고 타박할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사회적 현실을 고려해서 발언하는 게 더 옳은 일이 아닐까.
‘말이 칼이 될 때’를 쓴 홍성수 씨는 혐오 표현의 해악은 정신적 고통과 공존의 파괴에 있다고 말한다. 아이 엄마를 진짜 벌레 취급하는 식의 현실이 닥쳐올 수 있다. ‘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가 ‘저들을 반대한다’가 되고 ‘저들을 반대한다’가 ‘저들을 박멸하자’가 되는 건 순간이다. 그는 아이와 엄마에 대한 혐오를 실행에 옮긴 것이 ‘노키즈존’이라고 말한다. 어떤 특정 집단을 지정해 배제하는 것은 항상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도저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대상 서비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린이도서관 운영자로서 느끼는 부담도 다르지 않다. 어린이용 식기와 의자를 따로 준비해야 하고 아이는 아무래도 음식을 많이 흘리고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고 아무데나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이 꼭 노키즈존이어야 하는가, 아이의 출입을 원천 봉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짜 질문은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 우리 사회가 과연 아이와 아이 엄마를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있는가, 아이와 엄마에 대한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맥락을 읽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어렵고도 섬세한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은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이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공공선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준다. 힘들게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기 엄마를 맘충이라 조롱하기 전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어머니의 정성과 노동, 견딤과 눈물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라. 세상에 ‘맘충’이라고 불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와 엄마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를 환대하는 공공시설과 대안 공간들, 대항 표현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공존의 사회’를 위하여 우리 사회가 혐오 표현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추기도 하지만, 삶을 비틀기도 한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한다···. 한(韓)국이 국민의 표준을 지정할 때, 표준에 끼지 못한 사람은 한(恨)국에 산다.” (‘웅크린 말들’, 이문영)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맘충’은 언제부턴가 혐오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에도 나온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독박 육아’에 시달리던 젊은 엄마가 오래간만에 커피 한 잔 마시러 유모차를 끌고 나섰다가 하루아침에 맘충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그렸다. 혐오의 표적 집단으로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는 흔히 언급되지만 아이 엄마를 표적 집단으로 설정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아이 엄마의 이미지가 예의 없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기피 대상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대상 서비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린이도서관 운영자로서 느끼는 부담도 다르지 않다. 어린이용 식기와 의자를 따로 준비해야 하고 아이는 아무래도 음식을 많이 흘리고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고 아무데나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이 꼭 노키즈존이어야 하는가, 아이의 출입을 원천 봉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짜 질문은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 우리 사회가 과연 아이와 아이 엄마를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있는가, 아이와 엄마에 대한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맥락을 읽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어렵고도 섬세한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은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이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공공선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준다. 힘들게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기 엄마를 맘충이라 조롱하기 전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어머니의 정성과 노동, 견딤과 눈물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라. 세상에 ‘맘충’이라고 불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와 엄마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를 환대하는 공공시설과 대안 공간들, 대항 표현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공존의 사회’를 위하여 우리 사회가 혐오 표현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추기도 하지만, 삶을 비틀기도 한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한다···. 한(韓)국이 국민의 표준을 지정할 때, 표준에 끼지 못한 사람은 한(恨)국에 산다.” (‘웅크린 말들’, 이문영)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