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은 바쁘지 않은 사람, 시간 있는 사람이다. 모두가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지 시간 있다는 사람은 없다. 지위와 나이, 성별에 상관없는 일이다. 신기한 것은 일에 매여 있는 사람이나 특별히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 느끼는 이 절대적 결핍감의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영향은 확실하다. 자신과 주변 사람, 심지어 사는 것 자체에 대한 깊은 우울감과 불행감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이 ‘있다’와 ‘없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마치 물건처럼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을 알아 보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시계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시계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의 개념을 숫자로 나눠서 표시한 것일 뿐, 시간 그 자체가 아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시간이 삶의 절대적 조건이며 형식이고,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시간이 가진 거대한 힘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건강과 장수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 또한 시간의 힘에 저항하려는 인간적 욕망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부질없음을 누가 모를 것인가. 알면서도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쓰는 사이에 시간은 사라진다. 소유되지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어느새 사라지는 것, 이것이 시간의 본질이다. 이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답을 러시아의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듣는다.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은 ‘전혀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시간의 의미와 가치가 길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시간을 길이로 측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의미한 시간 낭비다. 도스토옙스키는 젊은 시절 급진적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어느 날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사상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체포되었고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28살 때였다. 도스토옙스키는 막 총살이 집행되려던 상황을 형에게 이렇게 전했다.

“오늘 12월 22일, 우리는 모두 세묘노프 광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광장에서 곧 공개 총살형이 집행되려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황제의 사면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도스토옙스키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 경계는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가! 삶은 그저 순간순간의 연속일 뿐이지 않을까. 삶과 죽음의 차이가 말 그대로 한 순간에 있음을 직접 체험한 도스토옙스키는 시간이란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조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의지에 의한 어떤 행위도 없이 그저 살아온 수십 년 또는 평생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 도스토옙스키가 처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겪었던 ‘살아 있는 5분’은 그의 삶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는 절대적 시간이 되었다.

일상에서 5분은 눈 깜짝할 사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에게 5분이라는 시간은 절대성을 획득하는 영원한 시간이 되었다. 이 5분은 도스토옙스키가 살아왔던 어떤 시간보다 더 깊고 길게 확장되는 시간이었기에 “무한대의 시간이고 엄청난 재산처럼 여겨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5분 동안 많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5분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계획한다. 그가 삶의 마지막 5분을 나눠서 쓰기로 한 일은 세 가지,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데 2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1분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 5분의 길이를 우리는 세상의 어떤 시계로 잴 수 있을 것인가?

도스토옙스키는 매 순간이 우리의 의지에 따라서 한 세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 세기의 삶을 사는 것은 5분이라는 ‘지금’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숫자로 표시되는 ‘지금’의 길이를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순간이 지닌 가치를 더 확장함으로써 더 많은 삶을 사는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도 누구에게나 5분은 남아 있다. 다른 가치와 다른 삶을 위한 시간은 언제나 있다는 뜻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는 절대적 시간으로서의 5분은 당연히 시계 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실존의 시간이다. 삶을 회복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절대적 가치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 따라서 시간은 채워지거나 덧없이 사라진다. 5분이 덧없이 사라져 버린 후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살지 않은 채 버려진 삶’과 행위로 나가지 못한 의지의 파편들이다. 바로 사라져 버린 이 5분의 연속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5분의 시간들 속에서 수많은 ‘현재’가 쓰이지 않은 채 낭비된 탓이다. 지나온 시간과 삶이 덧없이 느껴진다면 방금 덧없이 보내 버린 5분을 먼저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각자의 삶에서 5분이 갖는 가치는 전적으로 개별적인 것이기에, 이 시간 또한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고유한 길이를 갖는다. 그러니 타인의 시계에 우리 자신의 시간을 맞추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