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중독은 없다
2018년 03월 26일(월) 00:00 가가
[문요한 정신과 의사]
여행 중독이란 것도 있을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찾은 G라는 여성이 그러했다. 그녀의 주된 문제는 지나친 해외여행으로 인한 카드 빚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에 지쳐 한 번씩 다녀온 해외여행은 그녀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활력을 주었다. 덕분에 담을 쌓고 있던 외국어 공부도 덤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올수록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은 점점 더 고역으로 느껴졌고 시간만 나면 여행을 떠나곤 했다.
덕분에 그녀의 여행 블로그와 SNS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여행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여행지와 숙소를 찾아다녔다. 여행을 가고 싶어서라기보다 가야 할 것 같아서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휴식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생생한 여행기를 올리느라 여행지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다. 그녀의 여행은 어느덧 노동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여행 마니아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여행을 다녀와야 살 것 같다고 했다. 여행은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알코올 중독자들과 상담을 할 때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사실 많은 중독자들은 스스로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게임 중독자들은 게임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본인만 부정할 뿐,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러나 G의 경우처럼 눈에 띄지 않는 중독들이 있다. 운동 중독, 일 중독, 여행 중독, 공부 중독, 신앙 중독, 취미 중독 등이다.
이러한 중독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인다. 일이나 운동을 열심히 하고, 늘 끊임없이 배우러 다니고, 취미 활동에 몰두하고, 신앙 활동에 열심이니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지런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부러움이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마니아를 넘어 중독자들이 많다.
즉, 즐기는 것이 아니라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로 그 활동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아픈데도 일을 놓지 못하고, 관절의 통증을 느끼는데도 고강도의 운동을 지속하고, 생활비가 부족한데도 월급만 타면 여행을 떠나거나 기호품을 사고, 생활은 뒷전인 채 신앙 활동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즉, 대상에 대한 갈망을 조절할 수 없고, 점점 내성이 생겨 그 빈도와 강도가 잦아지고, 중단 시에는 금단 증상이 나타나며 이로 인해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에 역기능이 나타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중독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윌리엄 글라서(William Glasser)는 ‘긍정적 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좋은 중독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쁜 중독에 비교하여 좋은 중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했다. 첫째, 생산적이다. 둘째, 장시간이 소요된다. 셋째, 관계의 양과 질이 확장된다. 넷째, 쾌감만이 아니라 성취감·충만감 등 다양한 정서적 충족이 이루어진다. 즉 나쁜 중독은 삶과 관계에 해롭지만 좋은 중독은 삶과 관계에 이롭다는 것이다.
그는 그 대표적 활동으로 운동, 독서, 명상, 취미 활동 등을 꼽았다.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삶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가 중독이기에 사실 좋은 중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도, 운동도, 취미도, 심지어 신앙도 중독이 된다. 그것은 그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져 균형을 잃어버리는 집착적 혹은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타민처럼 부족한 것도 병을 만들지만 지나친 것도 병을 만든다.
우리는 좋은 여가 생활을 위해 몰입과 중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절대적인 경계는 없다. 중독이란 쉽게 말해 그것만 좋고 나머지는 싫어지거나 의미가 없는 상태이다. 여행 중독이라고 하면 여행 외의 일이나 일상은 다 귀찮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고, 신앙 중독이라고 하면 신앙 외의 것은 관심이 가지 않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여행만 가려고 하고 신앙 활동만 하려고 한다. 그에 비해 몰입은 다르다. 몰입은 그것이 좋기 때문에 다른 것들도 좋아진다. 여행이 좋았기에 그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활기차게 살아가고, 신앙이라면 그 영적 기쁨으로 일과 관계에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큰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다. 행복을 마냥 미루기보다 오늘의 작은 행복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른 것은 아끼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과 삶과 관계의 균형이다. 일밖에 모르는 것도 병이지만 여가밖에 모르는 것도 병이다. 건강과 활기는 균형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독이 아니라 몰입이고 고달픈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여행 마니아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여행을 다녀와야 살 것 같다고 했다. 여행은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알코올 중독자들과 상담을 할 때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사실 많은 중독자들은 스스로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게임 중독자들은 게임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본인만 부정할 뿐,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즉, 즐기는 것이 아니라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로 그 활동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아픈데도 일을 놓지 못하고, 관절의 통증을 느끼는데도 고강도의 운동을 지속하고, 생활비가 부족한데도 월급만 타면 여행을 떠나거나 기호품을 사고, 생활은 뒷전인 채 신앙 활동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즉, 대상에 대한 갈망을 조절할 수 없고, 점점 내성이 생겨 그 빈도와 강도가 잦아지고, 중단 시에는 금단 증상이 나타나며 이로 인해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에 역기능이 나타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중독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윌리엄 글라서(William Glasser)는 ‘긍정적 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좋은 중독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쁜 중독에 비교하여 좋은 중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했다. 첫째, 생산적이다. 둘째, 장시간이 소요된다. 셋째, 관계의 양과 질이 확장된다. 넷째, 쾌감만이 아니라 성취감·충만감 등 다양한 정서적 충족이 이루어진다. 즉 나쁜 중독은 삶과 관계에 해롭지만 좋은 중독은 삶과 관계에 이롭다는 것이다.
그는 그 대표적 활동으로 운동, 독서, 명상, 취미 활동 등을 꼽았다.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삶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가 중독이기에 사실 좋은 중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도, 운동도, 취미도, 심지어 신앙도 중독이 된다. 그것은 그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져 균형을 잃어버리는 집착적 혹은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타민처럼 부족한 것도 병을 만들지만 지나친 것도 병을 만든다.
우리는 좋은 여가 생활을 위해 몰입과 중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절대적인 경계는 없다. 중독이란 쉽게 말해 그것만 좋고 나머지는 싫어지거나 의미가 없는 상태이다. 여행 중독이라고 하면 여행 외의 일이나 일상은 다 귀찮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고, 신앙 중독이라고 하면 신앙 외의 것은 관심이 가지 않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여행만 가려고 하고 신앙 활동만 하려고 한다. 그에 비해 몰입은 다르다. 몰입은 그것이 좋기 때문에 다른 것들도 좋아진다. 여행이 좋았기에 그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활기차게 살아가고, 신앙이라면 그 영적 기쁨으로 일과 관계에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큰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다. 행복을 마냥 미루기보다 오늘의 작은 행복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른 것은 아끼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과 삶과 관계의 균형이다. 일밖에 모르는 것도 병이지만 여가밖에 모르는 것도 병이다. 건강과 활기는 균형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독이 아니라 몰입이고 고달픈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