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광주, ‘백 투 더 베이식!’
2018년 01월 24일(수) 00:00 가가
박 진 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오랜만에 만난 청년 작가 A씨는 지난해 자신의 ‘무능력’으로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씁쓸해 했다. 평소 독창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그의 입에서 나온 자조 섞인 한탄은 왠지 지나친 겸손으로 들렸다. 하지만 저간의 사연을 들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후원금 유치에 나선 작가들
지난해 봄, 그는 광주문화재단(문화재단)으로부터 ‘2017 한국메세나협회 지역특성화 매칭 펀드 사업 설명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매칭 펀드 사업은 메세나협회가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1대 1 매칭 형식으로 기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문화재단은 보도 자료를 통해 메세나협회로부터 7500만 원을 ‘따왔다’며 매칭 펀딩 방식에 따라 7500만 원을 추가 유치해 총 1억3000만 원을 지역 작가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A씨처럼 희망을 품은 10여 명의 작가가 참석했다. 하지만 문화재단은 작가들에게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유치해 오면 매칭 펀드의 혜택을 주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가령, A씨가 특정 기업으로부터 2000만 원 기부 약정을 받아 오면 매칭 펀드로 2000만 원을 ‘보태’ 총 400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작품성이나 작가의 역량은 지원 요건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작가들이 기업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유치하기란 녹록지 않다. 어떤 기업이 메세나 활동에 긍정적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인맥이 넓지 않은 젊은 작가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 작가들은 문화재단이 요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매칭 펀드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당시 B 작가는 모 기업 대표에게 후원을 청하는 과정에서 ‘대가’를 바라는 듯한 뉘앙스를 접하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지역 미술계에선 문화재단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매칭 펀드 사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문화재단이 기업들로부터 기금을 유치해 작가들에게 나눠 줘야 하지만 재단의 인력 부족과 작가의 자생력 등을 운운하며 ‘한 발짝 물러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인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직접 유치 활동에 나서게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장기적으론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척박한 메세나 현실을 감안하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 점에서 인천문화재단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6년 한국메세나협회와 지역특성화 매칭 펀드 사업을 추진한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내 기업들로부터 총 1억2천만 원(1대1 매칭)의 재원을 확보했다. 프로그램 취지와 기대 효과 등을 담은 기획서를 들고 기업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후원금 유치에 나선 덕분이다.
외적 성과에만 치중해서야
문화행정의 ‘기본’을 간과하는 곳은 비단 문화재단만이 아니다. 지역의 대표 미술 기관인 광주시립미술관은 미술관 운영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인 ‘교육’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예술 교육은 연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의 문화 생활 향유 보장을 내걸고 5개년 사업으로 선정한 새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선 광주시 차원에서도 생애별 문화 예술 교육을 추진해야 하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시립미술관에는 에듀케이터가 없다. 문화 예술 교육을 전담하는 담당자가 없다 보니 부속 시설인 어린이 갤러리는 한 사회 기관에 맡겨 수년째 위탁 운영하고 있고, 가족 단위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트 피크닉’ 역시 매년 공모를 통해 주관사를 뽑고 있다. 가장 전문적이어야 할 미술관 교육이 ‘외부의 손’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광주시는 정기 인사를 통해 시 문화 행정의 컨트롤 타워인 문화정책실장을 6개월 만에 교체해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임명된 전임 문화정책실장이 업무 파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무렵, 타 부서로 발령이 난 것이다. 2015년 이후 최근까지 문화정책실장을 거쳐 간 고위공무원이 네 명에 이르는 것만 봐도 시의 문화 사령탑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전문적인 식견이 더 요구되는 문화 행정의 특성을 망각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역의 문화 예술 기관들은 장밋빛 청사진으로 한 해를 연다. 시민들의 문화 향유 확대에서부터 역동적인 예술 환경 조성, 문화 생태계 활성화, 예술인 일자리 창출 등 광주의 미래를 좌우하는 묵직한 화두를 내놓으며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문화 광주의 ‘근간’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내부 역량 강화에는 소홀한 채 외적 성과에만 치중한다면, 이들의 화려한 비전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될 터. 그래서 말인데, 올해는 ‘기본’에 충실한 한 해를 만들자. ‘레츠 고, 백 투 더 베이식!’
/jhpark@kwangju.co.kr
후원금 유치에 나선 작가들
지난해 봄, 그는 광주문화재단(문화재단)으로부터 ‘2017 한국메세나협회 지역특성화 매칭 펀드 사업 설명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매칭 펀드 사업은 메세나협회가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1대 1 매칭 형식으로 기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문화재단은 보도 자료를 통해 메세나협회로부터 7500만 원을 ‘따왔다’며 매칭 펀딩 방식에 따라 7500만 원을 추가 유치해 총 1억3000만 원을 지역 작가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를 두고 지역 미술계에선 문화재단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매칭 펀드 사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문화재단이 기업들로부터 기금을 유치해 작가들에게 나눠 줘야 하지만 재단의 인력 부족과 작가의 자생력 등을 운운하며 ‘한 발짝 물러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인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직접 유치 활동에 나서게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장기적으론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척박한 메세나 현실을 감안하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 점에서 인천문화재단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6년 한국메세나협회와 지역특성화 매칭 펀드 사업을 추진한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내 기업들로부터 총 1억2천만 원(1대1 매칭)의 재원을 확보했다. 프로그램 취지와 기대 효과 등을 담은 기획서를 들고 기업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후원금 유치에 나선 덕분이다.
외적 성과에만 치중해서야
문화행정의 ‘기본’을 간과하는 곳은 비단 문화재단만이 아니다. 지역의 대표 미술 기관인 광주시립미술관은 미술관 운영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인 ‘교육’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예술 교육은 연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의 문화 생활 향유 보장을 내걸고 5개년 사업으로 선정한 새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선 광주시 차원에서도 생애별 문화 예술 교육을 추진해야 하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시립미술관에는 에듀케이터가 없다. 문화 예술 교육을 전담하는 담당자가 없다 보니 부속 시설인 어린이 갤러리는 한 사회 기관에 맡겨 수년째 위탁 운영하고 있고, 가족 단위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트 피크닉’ 역시 매년 공모를 통해 주관사를 뽑고 있다. 가장 전문적이어야 할 미술관 교육이 ‘외부의 손’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광주시는 정기 인사를 통해 시 문화 행정의 컨트롤 타워인 문화정책실장을 6개월 만에 교체해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임명된 전임 문화정책실장이 업무 파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무렵, 타 부서로 발령이 난 것이다. 2015년 이후 최근까지 문화정책실장을 거쳐 간 고위공무원이 네 명에 이르는 것만 봐도 시의 문화 사령탑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전문적인 식견이 더 요구되는 문화 행정의 특성을 망각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역의 문화 예술 기관들은 장밋빛 청사진으로 한 해를 연다. 시민들의 문화 향유 확대에서부터 역동적인 예술 환경 조성, 문화 생태계 활성화, 예술인 일자리 창출 등 광주의 미래를 좌우하는 묵직한 화두를 내놓으며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문화 광주의 ‘근간’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내부 역량 강화에는 소홀한 채 외적 성과에만 치중한다면, 이들의 화려한 비전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될 터. 그래서 말인데, 올해는 ‘기본’에 충실한 한 해를 만들자. ‘레츠 고, 백 투 더 베이식!’
/jh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