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잡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2017년 12월 27일(수) 00:00 가가
송 기 동 예향부장
“그때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고 그러잖아요. 못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굶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난한 것도 아니잖아요. ‘마음을 못 잡기 때문에’ 불안하고 힘든 거예요.”
지난 2월,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을 인터뷰했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그의 필사(筆寫) 시집이 인기를 끌 때였다. 당초 필사 시집을 떠올린 것은 2015년이었다고 한다. 세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줄 방법에 대해 고심하던 ‘섬진강 시인’이 내린 처방은 좋은 시를 베껴 써 보는 필사였다.
“시를 필사해 보면 시인의 마음에 닿지 않을까, 위로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잡아주지 않을까?” 책을 펴낸 후 시장 반응은 시인조차 놀랄 만큼 뜨거웠다. 책에 실린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이 tvN 드라마 ‘도깨비’에 소개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 필사 붐이 일었다. 요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어로 ‘필사’를 입력하면 400여 권의 관련 서적 제목이 죽 뜰 정도다.
좋은 시 필사하며 위안 찾아
몇 년 새 일고 있는 필사 붐을 뒤집어 생각하면 한국 사회상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바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시대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한 학부모는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한 남학생이 다른 학교에서 딸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 전해 들었다. 그 아이가 올해 한두 차례 ‘위험스러운’ 행동을 했다. 같은 반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정도였지만 혹시나 새 학년에 같은 반이 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워하고 있단다. 특별한 조치 없이 쉬쉬하고 넘어가는 듯한 학교 측의 대응에도 불만이 많다. 이런 염려는 다른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여차하면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분위기다.
더욱이 최근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자살 뉴스가 감수성 여린 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우려스럽다. ‘핫한’ 가요뿐만 아니라 아이돌 가수의 사생활 일거수일투족도 어린 팬들에게 큰 파급력을 갖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마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학업 때문일까,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까? 최근 빈발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는 과정을 무시하고 성과와 결과만을 요구하는 ‘일등 만능주의’ 세태를 보여 주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풀이된다.
‘필사’뿐만 아니라 ‘명상’도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최근 취재차 만난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우리가 기운을 잃었을 때, 약이나 술이 아니고 마음으로 다시 기운을 일으킬 수 있는 게 명상”이라고 말했다.
고 이사장이 운영하는 명상치유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는 연간 이용자는 10만여 명. 지난 2010년 10월 충북 충주에 문을 연 이곳 명상 프로그램은 걷기 명상을 비롯해 향기 명상, 호흡 명상, 소리 명상, 웃음 명상, 칭찬 명상 등 다양하다. 센터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숲속에 걷기 명상을 하기 좋은 ‘감사의 길’(90분)과 ‘사랑의 길’(40분), ‘화해의 길’(40분), ‘용서의 길’(30분)이 조성돼 있다. 불화하던 사이도 숲길을 걸으며 명상하다 보면 서로 화해를 하게 된다고 한다.
마음에도 숨구멍을 내줘야
“몸에 호흡이 필요하듯 마음도 숨구멍을 열어 숨쉬기를 해줘야 합니다.” 고 이사장은 최근 펴낸 ‘절대 고독’에서 ‘마음의 숨구멍을 열어 주라’고 말한다. 그는 ‘마음에 숨구멍을 내는 일’로 기도와 명상, 여행, 산책, 독서, 사랑을 꼽았다. 이제는 ‘마음 산업’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다. 요즘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는 시대에 ‘마음 산업’은 4차 산업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한 해,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와 한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짓눌렀다. 필사와 명상 열풍은 개인 스스로 ‘마음의 숨구멍’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바라본 새해에는 따뜻한 온기를 품어 타인을 배려하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song@kwangju.co.kr
지난 2월,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을 인터뷰했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그의 필사(筆寫) 시집이 인기를 끌 때였다. 당초 필사 시집을 떠올린 것은 2015년이었다고 한다. 세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줄 방법에 대해 고심하던 ‘섬진강 시인’이 내린 처방은 좋은 시를 베껴 써 보는 필사였다.
좋은 시 필사하며 위안 찾아
몇 년 새 일고 있는 필사 붐을 뒤집어 생각하면 한국 사회상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바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시대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한 학부모는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한 남학생이 다른 학교에서 딸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 전해 들었다. 그 아이가 올해 한두 차례 ‘위험스러운’ 행동을 했다. 같은 반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정도였지만 혹시나 새 학년에 같은 반이 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워하고 있단다. 특별한 조치 없이 쉬쉬하고 넘어가는 듯한 학교 측의 대응에도 불만이 많다. 이런 염려는 다른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여차하면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분위기다.
고 이사장이 운영하는 명상치유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는 연간 이용자는 10만여 명. 지난 2010년 10월 충북 충주에 문을 연 이곳 명상 프로그램은 걷기 명상을 비롯해 향기 명상, 호흡 명상, 소리 명상, 웃음 명상, 칭찬 명상 등 다양하다. 센터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숲속에 걷기 명상을 하기 좋은 ‘감사의 길’(90분)과 ‘사랑의 길’(40분), ‘화해의 길’(40분), ‘용서의 길’(30분)이 조성돼 있다. 불화하던 사이도 숲길을 걸으며 명상하다 보면 서로 화해를 하게 된다고 한다.
마음에도 숨구멍을 내줘야
“몸에 호흡이 필요하듯 마음도 숨구멍을 열어 숨쉬기를 해줘야 합니다.” 고 이사장은 최근 펴낸 ‘절대 고독’에서 ‘마음의 숨구멍을 열어 주라’고 말한다. 그는 ‘마음에 숨구멍을 내는 일’로 기도와 명상, 여행, 산책, 독서, 사랑을 꼽았다. 이제는 ‘마음 산업’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다. 요즘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는 시대에 ‘마음 산업’은 4차 산업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한 해,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와 한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짓눌렀다. 필사와 명상 열풍은 개인 스스로 ‘마음의 숨구멍’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바라본 새해에는 따뜻한 온기를 품어 타인을 배려하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song@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