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완(51) 씨는 그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특정 휴대전화 소유자만 가능했던 영상 통화 기능을 2015년에 모든 기종 사용자들이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에게 대수롭지 않은 서비스 확대지만, 김 씨와 같은 처지의 농아인(聾啞人)에게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비로소 맘 놓고 지인들과 수어(手語)로 통화하게 됐다. 문자 메시지로만 의사소통을 해 온 농아인으로서는 신세계가 열린 셈이었다. 그 후 농아인의 명함에는 전화번호와 함께 문자 메시지를 뜻하는 ‘문자’ 외에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는 ‘영상’이란 단어가 추가됐다.

하지만 이들의 고충은 지금도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몸이 아파 응급실에 실려 가더라도 의사에게 아픈 곳을 정확히 알려 줄 수 없다. 광주시 수어통역센터에서 24시간 대기하는 수어 통역자가 동행해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행정 기관에서 간단한 서류 한 통을 떼더라도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국인이면서도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게 이들의 실상이다.



수어 드디어 우리말 되다



농아인은 자신들을 농인(聾人), 비장애인을 청인(聽人·듣는 이)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독특한 손 언어인 수어를 쓴다. 수어는 우리나라 농아인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언어로, 외국인들은 한국 수어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언어로 꼽는다고 한다. 지난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수어법)이 제정됨으로써 농아인은 당당히 비장애인에게 수어를 쓰도록 요구하고 수어로 말할 수 있게 됐다.

법의 총칙에 그 뜻이 담겨 있다. “이 법은 한국수화 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 수화 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 수화 언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골자를 추리면 수어가 국어와 같이 법적인 한국의 언어가 됐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 최초로 경기도에서 문을 연 한국수어교육원은 수어법을 토대로 설립된 전문 교육 기관이다. 개그맨 신동엽의 형인 경기도 농아인협회장이 산파역을 했다고 한다. 신동엽은 형이 회장을 맡고 있는 이 단체에 3억 원을 기부했다. 9000명에 달하는 광주 지역 농아인에게 수어교육원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치 단체와 지역 사회에서 관심을 가져 준다면 어엿한 수어 전문 교육 기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교육 기관이 간절한 것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9000여 명의 농아인이 있지만 절반가량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이라고 한다.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교사가 음성 언어로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글과 음성 언어로 소통하는 사회의 벽을 절감한 이들은 더욱 고립되고 있다. 우리가 농아인을 좀처럼 길거리에서 만나지 못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대부분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광주 지역 농아인도 반듯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막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실정이다.



5월 첫 희생자도 농아인



단절된 삶을 살아온 광주 지역 농아인이 세상과 소통에 나섰다. 아니 사고(?)를 쳤다. 내년 전국 농아인의 날 행사(7월6일)를 광주에서 치르기로 한 것이다. 연간 운영비가 고작 2300만 원인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가 전체 행사비 1억 원, 참가 인원 1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행사를 덥석 유치한 것이다. 이들은 광주시에 애걸하다시피 해서 행사비 절반인 5000여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들이 행사를 유치한 것은 5·18을 전국 농아인에게 알리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5월과 농아인을 연관 짓는 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겠지만, 5·18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들은 그 맥락을 금방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계엄군에게 학살된 첫 희생자가 바로 농아인 김경철(당시 24) 씨다.

구두를 만들어 팔고 닦아 주며 생계를 잇던 그는 5월18일 시내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계엄군 총성도 시위대 함성도 들을 수 없었던 그는 친구와 함께 일하던 중 계엄군에 붙잡혔다. 결국, 그는 광주 시민이자 장애인으로 두 번 죽어야 했다. 농아인이라며 손짓 발짓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그를 계엄군은 진압봉 등으로 잔혹하게 구타했다. “병신 흉내 낸다”며 더 가혹하게 매질했다.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잔인한 영혼 학살이었다.

한 줌 무용담도 이야깃거리로 파는 얄팍한 세상에서 농아인은 5월의 첫 희생자를 세상에 내세우지 않고 살았다. 그들이 5월을 통해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그들이 내미는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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