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행검(裴行儉, 619-682)은 강주 문회 출신으로 자는 수약이다. 당 태종, 고종 때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관리로 사람보는 안목이 뛰어났고 돌궐 대책을 담당해 공을 세웠다.

수나라 장군 배인기의 아들로 태종때 과거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해 관리의 길에 들어섰고 순조롭게 승진해 장안령(長安令)에 올랐다. 음양과 역술에 밝고 서법에 능했는데 특히 초서와 예서에 뛰어났다. 고종은 왕황후를 폐하고 총애한 무측천을 새 황후를 삼으려 했다. 그는 국가의 화가 반드시 이일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 고명대신 장손무기, 저수량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원공유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무측천의 어머니 양씨에게 알리니 서주도독부 장사로 좌천되었다.

그는 인재를 선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당 건국이래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고 인구도 늘어 관리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장인의와 함께 관리 임명을 공정, 투명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지방인 주현의 관리의 승급, 강등, 평가에 관한 표준을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는 당나라가 망할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돌궐과 토벌 등을 순무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677년 돌궐의 가한 아사나도지와 그의 부관 이차복이 토번과 연합해 안서 지방을 침입하는 일이 발생했다. 조정에서 토벌 대책을 논의했는데 그는 “토번이 노략질하고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 군사를 서쪽으로 보낸단 말입니까? 지금 파사왕이 죽고 그 아들 니원사가 장안에 인질로 와있으니 자기 나라로 돌아가 즉위하면 될 것입니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그를 안무대식사로 임명해 니원사가 돌아가 즉위토록 돕는 일을 명하였다. 서쪽 지방으로 군사를 이끌고 한가히 사냥하는체 하면서 기습적으로 아사나도지 군영을 공격해 그를 사로잡았다. 이어 정예의 기병을 뽑아 주야로 달려 이차복의 항복도 받아냈다. 아사나도지와 이차복을 달래 돌려보내고 파사왕을 본국으로 무사히 귀국도록 조치했다.

679년 고종은 그에게 연희를 베풀고 “경은 문무의 자질을 겸해 갖추었으니 이에 경에게 두 개의 직책을 주겠소”라며 예부상서겸 검교우위대장군을 제수하였다. 그를 정양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18만 군대를 거느리고 돌궐을 토벌토록 하였다. 장군 정무정과 이문간도 30만명을 인솔해 그의 지휘를 받도록 하였다. 3월 돌궐을 내몽골 흑산에서 대파해 족장인 아사덕봉직을 생포했다. 그는 돌궐을 속이는 작전을 폈다. 양식 운반 수량 300량을 거짓으로 만들고 매 수레마다 장사 5명씩을 숨기고 병사를 험한 요새에 숨겼다. 적들이 도착하자 당군은 수레를 버리고 흩어져 달아났다. 그들이 안장을 풀고 식량을 빼앗으려 하자 장수들이 수레 안에서 뛰어나와서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681년 돌궐의 아사나복념이 아사덕온부와 연합해 변경을 노략질했다. 그는 다시 대총관에 임명되어 조희순과 이문간을 부총관으로 삼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산서성 형구에 진을 치고 간첩을 많이 풀어 둘이 서로 시기하고 의심토록 계책을 꾸몄다. 결국 아사나복념은 아사덕온부를 잡아 항복을 청하였다. 망을 보는 기병이 먼지가 하늘에 닿게 하면서 오고 있다고 보고하니 그가 말하기를 “이는 마침내 아사나복념이 아사덕온부를 잡아가지고 항복하는 것이니 다른 도적은 아니다.” 돌궐의 남은 무리를 평정하고 그들을 데리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초 처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재상 배염이 그의 공을 시기해 처벌 상소를 올렸다. “아사나복념은 부장 장건욱과 정무정이 압박을 받았고 또 회홀 등이 북에서 그들을 압박하니 처지가 어려워져 항복한 것입니다” 결국 일행 54명을 장안 저잣거리서 참수했다. 그는 탄식해 말하기를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공로를 가지고 다투는 것은 수치스런 짓이다.” 이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682년 64세로 죽었다. 시호는 헌이고 저서로 「배행검집」 등을 남겼으나 없어졌다. 사지치원자 당선기식 이후재예(士之致遠者 當先器識 以後才藝). “선비는 먼길을 가는 자이니 그릇과 식견이 먼저고 이후 재주와 기예다.” 그가 남긴 명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