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종(許敬宗, 592-672)은 항주 신성 출신으로 자는 연족이다. 무측천의 측근으로 권세를 누렸다.

수양제 때 수재로 천거되 관직에 들어왔다. 수말 혼란기 반군지도자 이밀 밑에서 기실(記室)이 되었다. 진왕 이세민이 설치한 18학사의 일인으로 추천되었고 황제로 즉위한 후 중서사인이 되었다. 급사중으로 태종이 주도한 현무문의 정변을 미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前 황제의 행위에 대한 사관의 기록은 황제가 보지 않는 것이 관례였는데 태종은 이를 문제 삼았다. 태종은 “제왕이 스스로 국사를 보려고 하는 것은 전일의 악을 알고 장래의 훈계로 삼기 위함이다”며 기록을 보고 현무문 정변 관련 대목을 다시 쓰도록 명하였다. 그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사실(史實)을 윤색했다. 권력에 아부하는 성품이 잘 들어나는 일화다.

고종이 왕황후를 폐하고 무측천을 새 황후로 세우는 것에 적극 관여했다. 공으로 중서령이 되었다. 그는 무측천의 뜻을 헤아려 고명대신인 장손무기를 제거하는 작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장손무기는 태종비 장손황후의 오빠로서 최고의 중신이었다. 그는 장손무기가 위계방 등과 모반을 획책했다고 무고했다. “위계방이 장손무기와 더불어 친척을 모함하며 권력을 장손무기에게 돌려보내게 하고 틈을 보아 모반하려고 하였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을 읽고 고종은 다시 깊이 살피도록 지시했다. 외삼촌인 장손무기를 처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깊었다. 그는 재차 상소를 올려 “무기는 자기가 민 고종의 장남 이충이 폐태자가 된 것을 심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계방 등과 더불어 모반하였습니다”라며 체포해 법대로 처리할 것을 주청했다. 위계방은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장손무기가 사건과 무관함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남의 글씨체를 잘 모방하는 사람을 수소문해 위계방의 필적을 모사해 사건을 날조했다. 고종은 눈물을 흘리며 “장손무기가 만약에 이와 같다 하여도 짐은 결코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지만 천하 사람들이 장차 짐을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라며 고통스런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장손무기는 지금의 간사한 것들의 영웅이고 왕망과 사마의 같은 무리이니,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미루신다면, 신은 아마도 변란이 겨드랑이에서 발생할까 걱정이니,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고 처벌을 주청했다. 측근 원공유를 보내 저수량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거짓 계책을 꾸몄다. 저수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장손무기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현재 사천성 팽수현에 해당하는 귀양지 검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측천의 최대 정적이 제거되었다.

그는 재상 상관의 처형에도 개입했다. 무측천의 전횡에 질린 고종은 그녀를 폐황후시키려 했다. 상관의는 조정 사람들 모두 그녀가 사라지기를 원한다고 동조했다. 그러나 무측천 제거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는 바람에 상관의는 처형되고 그의 일가족은 조정의 노비가 되었다.

672년 정2품 고양군공 허경종이 죽었다. 그의 공과에 관하여 조정에서 논의가 분분했다. 태상박사 원사고는 “그는 큰아들을 먼 곳으로 귀양 보냈고 작은 딸은 오랑캐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시법에 따르면 이름과 실제가 다르면 무(繆)라고 합니다”며 시호(諡號)를 무공으로 정하도록 청하였다. 정처인 배씨가 일찍 죽자 그녀의 몸종을 후처로 삼고 성을 우라고 하였다. 그러나 큰아들인 허암이 그녀와 간통하자 불효를 이유로 외지에 귀양을 청한 바가 있다. 그의 손자 허인백이 반대 상소를 올리자 태상박사 왕복치는 무공이라는 시호가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결국 예부상서 왕사경의 의견을 따라 시호를 공(恭)으로 정하였다.

이처럼 시호가 논란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의 처세는 문제가 많았다. 태종의 뜻에 부합해 현무문의 난을 보기 좋게 윤색한 점, 무측천을 도와 왕황후를 폐하는데 앞장 선 점, 고명대신 장손무기를 제거하는데 참여한 점 등은 선비로서 결코 명예스런 행동이 아니었다. 태종, 고종 시절 두루 요직을 거쳤지만 덕(德)이 재(才)에 미치지 못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