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살충제 계란’ 파동 등 닭 질병의 주요 원인으로 밀집사육이 지목을 받고 있다.

닭들이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다 보니 전염병과 기생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해결 대안으로는 닭들이 운동을 하며 면역력을 기르고, 기생충을 자체 해결하는 ‘흙 목욕’ 등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 방사장’을 갖춘 동물복지형 농장이 주목받고 있다.

22일 오전 방문한 화순 산란계농장 ‘쉴만한농원’(춘양면 가동리)에서는 평평하고 널찍한 계사에서 닭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일부 닭들은 흙에 몸통을 비볐고, 서로 몸을 쪼아 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농장은 전국을 대표하는 동물복지형 농장 중 한 곳이다.

이상근(49) 대표는 “(닭이 흙에 몸을 비벼대고, 서로 몸을 쪼는 것은)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나 이를 털어 내고, 서로 몸에 있는 기생충들을 잡아먹는 것”이라며 “계사 이외에도 닭들을 위한 야외방목장이 있지만 지난해 AI 여파와 최근 비가 많이 와 지금은 풀어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또 이날 갑자기 방문한 취재진에게 다가오는 닭들을 가리키며 “닭들이 여유가 있으니 사람이 들어와도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농장에서는 2080㎡(630평·26m×80m) 규모와 975㎡(300평·15m×65m) 규모 등 2개의 닭 계사를 운영 중이다. 630평 계사는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로부터 지난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고, 올해 새로 지은 300평 계사도 인증 신청을 앞두고 있다.

각각의 계사에는 닭 6000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현재 630평 계사에서는 매일 계란 1만1000개∼1만5000개가 출하되고 있다. 이 농장의 달걀은 ‘13쉴만한’이란 난각코드가 찍혀 전량 타지역 대형 슈퍼마켓체인으로 납품되고 있다. 납품가는 일반달걀의 3∼4개에 해당하는 개당 300∼400원대다. 하지만 생산 규모 대비 관리비, 사료비 등을 따져보면 오히려 밀식 사육보다 수익이 더 낮다는 게 농가의 하소연이다.

이 대표는 “수탉 1마리 당 암탉 7마리로 성비율을 맞추고 바닥에는 볏짚을 깔아 닭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면서 “일부 농장에서는 진드기 살충제를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우리 농장에서는 닭 1마리당 1㎡ 공간을 확보해 풀어놓고 키우다 보니 진드기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농장은 전국 닭 농가를 휩쓴 AI 파동 때도 피해를 입지않았다고 한다.

‘쉴만한농원’처럼 자연방목장을 갖춘 산란계 농장은 전남에서 4곳에 불과하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전남 산란계 농장이 15곳인 점을 감안했을 때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연방목형 농장은 대규모 사육을 못해 계란값이 일반에 비해 2∼3배 비싸지만 건강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이 건강한 계란을 생산할 수 있는 동물복지형 농장은 유럽에서 먼저 주목 받았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03년 공장식 밀집 농장(배터리 케이지) 신축을 금지하고, 신규 축사는 마리당 최소 사육면적이 0.075㎡ 이상인 ‘복지형 케이지’ 사용을 의무화했다.

기존 농가도 2012년부터 배터리 케이지 사용을 금지하면서 아예 방사 형태로 닭을 키우는 축사도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방사 사육, 평사 사육, 닭장 사육 등 사육환경표시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비싸더라도 방사 사육에서 생산된 계란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현 시스템으로는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선 수십만 마리를 동시에 키울 수 있는 ‘배터리 케이지’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질병이 많고 닭도 큰 고통을 받아 계란의 품질까지 떨어진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최소한 닭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우리에 40∼50마리만 넣는 평사 사육이라도 해야 한다. 이번 계란 파동이 국민에게 계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희기자 kimy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