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적(李世勣, 594-669)은 산둥성에 해당하는 조주 이호 출신으로 자는 무공이다. 본명은 서세적이나 당고조로부터 이씨성을 하사받았다. 태종, 고종 양대에 걸쳐 무공을 세워 능연각 24인으로 선정됐다.

그는 수양제 말기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611년 농민 봉기에 가담하였다. 반군 지도자 이밀 휘하에 들어가 공을 세워 동해군공에 봉해졌다. 이밀이 왕세충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자 같이 당에 귀순했다. 여양총관에 임명되고 이세민 진영에 참여했다. 정관 3년(629년) 돌궐에게 크게 이겨 5만명을 포로로 획득하는 공을 세웠다. 이후 병주에 진군하면서 돌궐의 남침을 막았다. 정관 15년(641년)에는 내몽골에서 세력을 떨치던 설연타를 격파했다. 싸움에서 이기면 아랫사람에게 공을 돌리고, 얻은 재화는 모두 장수와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고 싶어 했고, 향하는 곳마다 승리했다.

태종은 일찍이 중신들에게 “지금 명장은 오직 이세적 이도종 설만철 세 사람 뿐이다”라며 무공을 높이 평가했다. 643년 그가 갑작스럽게 병에 걸렸다. “수염을 태워 재를 만들어 먹으면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태종은 수염을 잘라 약에 탔다. 그는 크게 감동해 피가 나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울면서 감사했다. 황제는 “사직을 위한 것이다. 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찌 감사할 것이 있겠는가”고 말했다. 태종은 어느날 연회에서 “짐이 여러 신하 중에 어린 고아를 의탁할 만한 자를 찾아보니 공보다 나은 자가 없다. 공은 지난번에 이밀을 져버리지 않았는데 어찌 짐을 버리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는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맹세했다. 그가 대취해 잠이 들자 황제는 어복을 벗어 덮어 주었다고 한다.

정관 말년 고구려 정벌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고구려는 장군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그의 조카를 보장왕으로 세웠다. 태종은 요동 정벌을 결심했다. 요동 정벌은 일찍이 위징이 반대했으며 방현령, 저수량 등 중신도 반대 입장이 완강했다. 이세적은 황제에게 정벌을 권했고 태종의 친정이 이루어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649년 태종이 중병에 들었다.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동중서문하삼품에 있던 이세적을 변방인 첩주도독으로 내보냈다. 태종이 그를 내친 이유는 후계자인 이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그의 충성심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태종은 말하기를 “이세적은 재주와 지모가 충분하나 너가 그에게 베푼 은혜가 없으니 잘 다루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내가 그를 내칠 것이니, 만약 그가 즉시 떠나거든 내 사후에 너가 등용해라.” 그가 집에도 들르지 않고 출발한 것은 태종의 깊은 뜻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종은 부친을 옆에서 모셨던 궁녀인 무측천을 총애했다. 그녀를 새로이 황후로 삼으려 했다. 654년 고종은 장손무기, 이세적, 우지녕, 저수량을 내전으로 불렀다. 황후 교체에 관해 중신들의 동의를 구하려 한 것이다. 저수량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우지녕은 감히 말하지 못했다. 이세적은 병을 핑계대고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입궐해 황제를 알현하니 황제는 “짐이 무측천을 황후로 세우려고 하는데 고명대신인 저수량이 불가하다고 고집을 부린다. 황후 교체를 포기해야 할 것인가”라고 하문했다. 그는 “이는 폐하의 집안일입니다. 왜 반드시 남에게 더 물어야 합니까”라고 답했다. 이에 고종은 황후 교체를 결심하게 되었다.

668년 그는 병사를 이끌고 설인귀의 당군과 신라군을 지휘해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하였다. 669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병이 깊어지자 의사의 치료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본래 산동의 농부였는데 훌륭한 황제를 만나 삼공의 지위에 올랐다. 수명의 길고 짧음에 기한이 있는 것이니 어찌 또 의사에게 가서 살기를 구하겠는가”고 말하였다고 한다. 정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태종의 능인 소릉에 배장되었다. 무덤을 음산, 철산, 오덕건산의 모양을 따라 만들었는데 돌궐과 설연타를 이긴 공을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