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王珪, 571-639)는 태원기 출신으로 자는 숙개다. 태종 이세민에게 발탁되어 간관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정관성세에 기여한 공으로 능연각 24인의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어려서 부친을 잃었다. 넉넉지 않은 생활에도 선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며 성격이 담백하고 재물이나 지위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당 건국 후 고조의 황태자 이건성의 막료가 되었다. 중사인에 임명되어 상당한 예우를 받았다. 626년 현무문의 정변으로 태자 건성과 황자 원길이 죽임을 당하고 이세민이 2대 황제가 되었다. 그는 건성의 참모인 위징과 왕규를 불러 “왜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시켰는가”라고 비난하였지만 그들의 당당한 태도에 감동받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기용했다. 이어서 황문시랑이 되고 태자우서사를 겸하였다.

627년 태종은 황문시랑 왕규와 국사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반란을 꾀하다가 살해당한 여강왕의 측실이었던 여인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태종은 그녀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여강왕은 무도한 인간으로서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다. 그 아내가 바로 이 여자다. 그야말로 폭악한 짓을 하였으니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나면서 물었다. “폐하는 여강왕이 남의 아내를 빼앗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잘못이라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잘못된 행동이라 판단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 왜 나에게 그 시비를 묻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답하기를 “이 여성이 황제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강왕의 행위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폐하가 틀렸다고 생각하신다면 악을 악으로 간주했지만 악을 내치지 못하는 결과가 됩니다.” 태종은 “그야말로 훌륭한 간언”이라고 감탄하고 그 여자를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왕규는 이처럼 명쾌히 사물의 본질을 찌르는 간언을 하였다.

정관 초 시중이 되어 방현령, 두여회, 위징, 온언박 등과 함께 국정을 주도했다. 특히 사람을 잘 판단해 좋은 인재를 여러명 추천했다. 628년 황제는 그에게 “수나라 말년에 50년에 해당하는 물자가 비축되었는데 수양제는 그 부유함을 믿고 사치심이 만족할 줄 몰라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창고의 저장은 흉년을 대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며 재물관리가 실효성 있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방현령, 두여회 등과 함께 재물을 아끼고 필요한 곳에 물자를 공급하도록 노력해 국가재정의 낭비와 민생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앞장섰다.

630년 황제는 여러 중신들과 연희를 열었는데 그에게 “경은 식견과 안목이 정통하고, 게다가 담론도 잘한다. 현령 이하를 경이 판단하고 자신은 그들에게 비해 어떠한지를 말해보라”고 하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부지런히 나라를 받들고, 아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면에서, 신은 방현령만 못합니다. 문무를 겸한 재능이 있어 나가면 장수가 되고 들어오면 재상이 되는 점에서, 신은 이정만 못합니다. 넓게 아뢰며 상세히 설명하고, 출납이 미더운 점은 온언박만 못합니다. 번거로움에 처하고 극심함을 다스리고, 많은 일을 완성하는 것은 대주만 못합니다. 간쟁을 자신의 업무로 하는 것에는 위징만 못합니다. 다만, 탁함을 막고 깨끗함을 장려하며,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는 점에서는 신이 이 사람들보다 조금 낫습니다.” 황제와 대신들이 그의 주장에 깊이 탄복했음은 물론이다.

632년 근신들과의 연회에서 장손무기는 “왕규와 위징은 옛날에 원수여서 서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 연회를 같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태종은 “위징과 왕규는 마음을 다해 섬기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쓰는 것이다.”라고 충성심을 높이 치하했다.

그는 한때 동주자사로 좌천되었으나 예부상서로서 예법과 학문, 과거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639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니 의(懿)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태종이 그의 충성심을 기려 소복을 입고 오랫동안 애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