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무기(長孫無忌, 594-659)는 낙양 출신으로 자는 보기다. 북주와 수나라에 걸쳐 돌궐 정책을 담당한 장손성의 아들로 태종 장손황후의 오빠다. 정관성세에 기여했고 말년 무측천 집권시 무고로 유배 중 자결했다.

어린 시절은 박복했다. 부친 사후 이복형 장손안업이 집안에서 내쫓아 외삼촌 고사렴의 집에서 자랐다. 지혜로웠고 역사와 문학에 깊이가 있었다. 고사렴은 질녀 장손씨를 이세민에게 출가시켰다. 세민의 부친 이연이 수말 진양에서 거병했다. 장안을 점령하고 당을 건국했다. 그는 위북행군전첨이 되어 세민을 보좌했다. 황태자 건성파와 세민파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두건덕, 왕세충을 무찔러 천하통일의 기반을 튼튼히 한 세민을 제거하기 위해 황태자 건성과 동생 원길이 음모를 꾸몄다. 유명한 현무문의 정변이다. 심복인 장손무기, 고사렴, 위지경덕 등이 밤낮으로 황태자파를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장손무기 등의 보좌에 힘입어 현무문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세민은 부친의 양위를 받아 2대 황제로 즉위했다.

627년 이부상서 겸 제국공에 봉해졌다. 이부상서로 재직 중에는 법률을 정하고 교수형을 완화해 극형의 폐해를 줄이는 등 제도정비에 앞장섰다. 태종에게 그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조정안에서 그의 무게가 남달랐음은 물론이다. 우복야 봉이가 죽자 태종은 그를 재상직에 발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외척의 전횡을 경계한 장손황후의 반대로 실현될 수 없었다. 633년 사공에 임명되었다. 그는 간곡히 사양하며 “신은 황공하옵게도 황제의 외척입니다. 천하가 폐하를 사사롭다고 할까봐 두렵습니다”고 답하였다. 태종은 “나는 관직을 위해 사람을 택하는데 재능이 함께 하는가를 생각한다. 오늘에 천거한 것은 개인적으로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허락지 않았다.

636년 장손황후가 죽었다. 임종시 거듭 친인척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오빠의 권세가 커지면 오히려 집안에 화근이 될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643년 태종은 능연각에 24명의 공신 초상화를 걸었는데 첫 번째를 차지했다. 고구려를 치기 위한 요동 출병때도 태종을 보좌했다. 태종 말년 가장 큰 문제는 후계자 결정이었다. 장남 승건이 기행을 저지르자 황태자 폐위 문제가 대두했다. 방현령은 차남인 위왕 이태를 밀었다. 그는 이태의 성품이 거칠어 황실의 안위가 위태로울 것으로 판단해 순한 심성의 9남 진왕 이치를 밀었다. 진왕을 황제로 옹립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사서에는 “장손무기가 이치의 태자 옹립을 완고하게 주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는 큰 무게가 있었다. 결국 이치가 후계자가 되고 그와 저수량이 좌우에서 보좌했다.

고종이 즉위하자 태위가 되어 국정의 중심에 섰다. 651년 「당률소의」 30권을 편찬했다. 653년 재상 방현령의 아들 방유애가 반란에 연류되자 그의 심문을 담당했다. 방유애가 참형에 처해지고 가문은 몰락했다.

654년 고종은 장손무기, 이적, 저수량, 우지녕을 내전으로 불렀다. 왕황후를 폐하고 총애하는 후궁 무측천을 황후로 봉하려는 의도였다. 고종이 장손무기에게 “황후는 아들이 없고, 무측천에게는 아들이 있으니, 지금 그녀를 황후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저수량이 “폐하께서 황후를 바꾸고자 하 신다면 천하의 명문가에서 잘 골라 뽑아야지, 하필 무씨입니까”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이적, 허경종 등의 찬성에 힘입어 무측천이 황후가 되고 저수량은 담주도독으로 좌천되었다. 658년 무황후는 측근 허경종을 시켜 그가 반란을 계획했다고 모함토록 지시했다. 고종은 외삼촌을 처벌하는 것을 주저했다. 허경종은 “결단할 때 주저하면 오히려 당한다”며 황제의 결단을 촉구했다. 결국 조서를 내려 현 스촨성 펑수이인 검주로 유배보냈다. 그해 7월 역모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허경종은 장손무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강요했다. 그는 목을 매 죽고 가산은 몰수되고 가족은 노비로 전락했다. 일찍이 외척의 국정개입을 극력 경계한 여동생 장손황후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