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밀(李密, 582-618)은 요동성 조양 출신으로 자는 현수다. 서위 8주국의 일원인 이필의 증손으로 수양제 말기 반란집단의 지도자로 정권 타도에 앞장섰으나 후일 당나라에 귀순 후 살해되었다.

그는 부친 포산공의 직위를 계승해 양제 밑에서 무관으로 일했으나 관직을 떠나 독서에 전념했다. 권신 양소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아들 양현감의 참모로 발탁되었다. 양소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사 아들에게 “너 같은 사람은 도저히 미치지 못할 인물이다”라고 평하였다고 한다. 예부상서 양현감이 고구려 정벌 중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양현감에게 세가지 계책을 건의했다. 첫째로 요동에 친정중인 양제의 배후를 공격할 것. 둘째 수도 장안을 칠 것. 셋째로 동도인 낙양을 점령할 것. 첫째는 상책, 둘째는 중책, 셋째는 하책이라고 설명했는데 양현감이 하책인 셋째 안을 선택함에 따라 반란은 실패했다. 양현감이 피살되고 그는 탈주해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망명 중에 농민봉기군의 세력을 얻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와강군이라 불리는 적양 세력에 귀순했다. 적양은 지방의 하급관리 출신으로 사건에 연류되 참형에 처할 위기에서 하급관리의 도움으로 탈주한 인물이다. 와강 지역을 중심으로 반군 활동을 벌였다. 운하를 지나는 배를 공격해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 집단이었다. 그는 학식과 인품으로 세력을 키웠고 군사 가웅의 신임도 얻었다. 어느날 주연을 베풀어 적양을 초청한 연후 살해해 버렸다. 이로써 적양 세력은 이밀의 휘하에 들어왔다. 적양의 휘하에 있던 위징과 서세적을 얻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로써 이밀의 세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그는 낙양 근처의 식량 저장지인 낙구창을 점령했다. 몇십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소문에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밀은 백만 군중을 거느리고 있다”는 말처럼 낙구창의 식량이 그의 최대 자산이 되었다. 위공에 오르고 서세적, 진숙보, 정지절 등 장수와 위징 같은 참모를 거느렸고 하북, 산동, 강회 지방까지 세력이 미치게 되었다.

그는 낙양을 포위했으나 오랫동안 함락시킬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조정의 친서가 도착해 반란을 일으킨 우문화급을 치면 태위에 봉하고 문무대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장군 서세적과 함께 우문화급을 공격했다. 추격전 중에 적군의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결국 우문화급 군을 격파하고 낙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낙양은 이미 왕세충 군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618년 9월 왕세충은 낙구창의 이밀을 공격했다. 부하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 크게 패배했다. 부득이 수도 장안을 장악한 당의 이연에게 투항했다.

이연 휘하에 들어가 광록경에 임명되었다. 광록사의 장관으로 제사의 준비 등을 담당하는 자리로 그에게는 커다란 굴욕이었다. 일찍이 이밀이 각지에 격문을 보냈을 때 이연은 그에 호응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중에 “당신을 기꺼이 받들어 용의 비늘을 끌어 잡고, 봉황의 날개를 붙잡겠다”는 표현이 있다. 이밀을 천하의 맹주로 받들겠다는 아부성 편지였는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이연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는 장안을 벗어나 다시 한번 뜻을 펴고 싶었다. 하남에 가있는 부장 서세적과 연계해 세력을 키우려는 복심이었다. 그는 몸소 산동 평정에 나서고 싶다고 조정에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 당 조정은 이밀과 왕세충을 서로 싸우게 해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생각에 이를 허가했다. 당은 감시역으로 장보덕을 수행시켰는데 그는 “이밀은 반드시 모반한다”고 보고했다. 당은 그에게 단신으로 장안에 돌아와 새로운 명령을 받도록 명하였다. 장안에 소환되면 죽을 것으로 예상해 군량을 탈취해 강을 건너 옹주로 도주했다. 당은 즉시 추격군을 보내 그를 처형했다. 당이 그의 배신을 예상하고 대비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가 식량이 풍부한 낙구창에 너무 안주한 것이 실패의 핵심 원인이었다. 그 와중에 장안에 이연이 들어와 판세가 바뀌었다. 위징, 서세적 같은 뛰어난 신하들이 당나라로 돌아선 것도 몰락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