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손으로/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그건 가시 투성이었어//가시 투성이 삶의 온 몸을 만지며/나는 미소 지었지/이토록 가시가 많으니/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라고…” 〈김승희 작 ‘장미와 가시’ 중에서〉

장미 만발한 계절이다. 서울에서 곡성까지, 놀이동산에서 대학 캠퍼스까지 전국 곳곳에서 장미 축제 바람이다. 그 예쁜 장미꽃이 보고 싶어 큰 맘 먹고 퇴근길에 조선대 장미정원을 찾았다. 장미정원엔 장미 반, 사람 반. ‘인생의 가시’를 알 길 없는 젊은이들이 행복한 순간을 셀카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로 싱그러운 장미향이 달콤했다.

230여 종의 수만 송이 장미들이 저마다의 멋을 뽐내는 장미정원을 돌아보니 오지호의 뒤를 이어 조선대 미술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호남 구상회화의 전성기를 꽃피우게 했던 서양화가 임직순(1919∼1996)의 장미 그림이 떠오른다. 화가는 이곳에 장미원이 조성되기 훨씬 오래 전 꿈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인 화풍의 수많은 장미를 화폭 속에 일구어왔다.

임직순의 ‘정물’(1988년 작)은 화병이 터질 듯 풍성하게 담긴 장미꽃들이 화면을 압도한다. 꽃의 원형으로서의 장미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장미를 그렸지만 장미의 형태를 떠나 강렬한 붓질이 강조된 색채의 울림이 쟁쟁하다. 장미꽃들의 다양한 색채, 상대적으로 작은 화병이 주는 긴장감, 장미꽃 보다 더 검붉은 정열의 배경, 기품 있는 색감 등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장미꽃 한 아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임직순은 1957년 국전에서 여인좌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래, 국전입상작의 범본으로서 인물 좌상 스타일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풍경 정물 인물 등 장르의 한계를 열어놓고 현란하고도 감성적인 색채감각으로 한 시대의 예술계를 풍미했던 화가는 조선대 미술대학에 25년간 재직하면서 오늘날 한국미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굵직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