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주비엔날레재단에서 시민대상 교육행사프로그램 일환으로 마련한 남종화의 원류를 찾아 떠나는 남도기행을 다녀왔다. 강진 백련사 템플 스테이를 시작으로, 해남 녹우당과 남종화의 성지라 할 진도 운림산방을 탐방하면서 새삼 ‘예향’의 근원인 우리 남도 땅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진도군 의신면 첨찰산 아래 자리한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小痴) 허련(許鍊·1808∼1893)이 만년에 기거했던 곳이다. 어린 시절 그림에 재능이 많았던 소치는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의 배려로 녹우당 공재 윤두서의 유작과 화보로 그림공부를 시작했고, 추사 김정희를 만나 서화수업을 했다. 그림으로써 천하를 주유했던 소치는 50세에 운림산방으로 귀향하면서 이후 그곳으로부터 미산 허형, 남농 허건과 허문, 방계손인 의재 허백련 등 남종화의 거대 화맥을 형성하였다. 소치가 세상을 떠난 후 오래 방치되었던 운림산방은 손자 남농 허건이 복원해 오늘에 이른다. 휴일이기도 했지만 남종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을 찾는 방문객이 줄 잇는 모습도 반가왔다.

소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선면산수화’(1866년 작)는 주산(主山)을 중심에 두고 아련하게 보이는 먼 산이 뒤를 두르고 있으며 전경에 집과 나무 언덕이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단아한 부채그림이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너그러운 자연 속 은거지로 돌아가는 늙은 선비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여백 가득 당나라의 선비 당경(1071∼1121)의 ‘산정일장(山靜日長)’ 전문이 추사체로 쓰여 있는데, 높은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한 선비가 자연의 품에 안기어 소박한 삶을 즐기며 늙어간다는 내용으로 선비의 이상향을 담은 내용이다.

소치는 ‘산정일장’의 이상향을 운림산방에서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림 속 산수화의 풍경과 소치가 직접 연못을 파고 정원을 가꾸며 나무를 심었던 운림산방의 닮은 모습이 겹쳐 보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