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락이 뜸했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요즘 뭐하니? 어디서 일하고 있니?”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한 기업의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한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이내 단순노무가 아닌 기계를 조작하는 생산기술원, 라인 설비를 수리하는 설비 보전원이라며 한참을 설명했다. 단순 생산직이라고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왜 우리는 생산직이라는 직업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걸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생산직종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 하는 일’이고, 어디에 가서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단순노무’라는 분위기와 시선이 팽배한 것 같다.

매일 밤, 제대로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2·3교대로 근무하며 누군가가 개발해낸 제품들을 ‘한 땀 한 땀’ 만들어내는, 경제성장의 주요동력이 되어야 할 그들이 어째서 ‘공돌이·공순이’라는 조롱까지 들어가며 저평가되어야하는 걸까?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라는 요즘이다. 기업의 생산직 사원으로 들어간 그들 역시 수없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낙방의 쓰라림을 겪어가며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했을 것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심정으로, 힘겹게 입사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청년 중 한 명일 터인데 말이다.

사실 나도 광주에서 3교대 근무를 하는 생산직 사원이다. 일부 사람들은 ‘단순한 일을 반복하면 생각과 일상도 단순해진다’며 생산직을 저평가한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나 또한 그 경험을 피해간 것은 아니다.

매주 바뀌는 교대근무 시간과 야간근무 등 점차 피로가 쌓여가고, 반복되는 업무로 일상의 특징이 사라졌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녔다. 매달 나오는 월급 통장을 바라보며 단순히 버텨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곤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단순하면 어때? 돈 많이 받으니까 괜찮아”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아니, “괜찮다”고 위장했다는 게 적절하겠다. 우리 사회가 생산직 직원을 바라보는 시선, 완벽히 단순해진 ‘공돌이’가 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공돌이·공순이’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가질 수 있는 답은 시간과 돈이었다. 3교대, 8시간의 근무만 끝나면 추가 근무가 없는 규칙적인 일상으로, 나에게 남은 하루 16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것. 3교대 밤낮없이 일한 추가 수당을 받아 생긴 여윳돈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 난 그렇게 생산직 근무를 하면서 내 남은 시간을 청년문화단체 ‘꿈틀’을 운영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꿈틀에서는 매달 청춘의 고민을 가지고 스스로 강연을 하는 ‘청춘톡투유’를 연다. 매달 행사를 진행하고 기획한다. 매회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를 수는 없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나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가슴이 뛴다. 심지어 꿈틀 활동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과 여유시간을 보장해주는 내 직업 ‘생산직’에 대해 자랑스럽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다행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과연 내가 이른바 ‘화이트컬러’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업무에 치여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도 가져본다.

생산직이라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삶 속에서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해보는 것은 삶과 직업의 만족도를 한층 높여줄 수 있다. 아직도 생산직이라는 직업을 가진 수많은 청년들이 그들의 삶과 위치에 대해 스스로 저평가하고, 자신의 직업을 남들에게 숨기며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면 다가가 말해주고 싶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가 올려야 한다.”

사무직보다 여유있는 시간이든지, 땀흘려 일 한만큼 받는 정당한 보수던지, 우리 생산직이 가진 업무 특성과 장점들을 살려 자신의 삶에 접목시킬 수 있다. 그러면 그 어떤 직업군보다 떳떳하고 매력있는 직업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