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봄
2017년 03월 27일(월) 00:00 가가
[정봉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자박자박 봄비가 온종일 내렸다. 도서관 마당의 키 큰 생강나무도, 울타리를 껴안은 키 낮은 개나리도, 까치발하듯 꽃대를 올린 수선화도 모두 아스라한 노란빛으로 젖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힌다고 했는데, 도서관의 봄은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열어젖힌다. 후두둑 빗방울처럼 몰려온 아이들,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는 저 웃음이야말로 봄이다.
비 오면 딱히 갈 데가 없어서, 날씨가 좋으면 나들이 삼아서, 때로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서, 대체로 두런두런한 사람들 기운이 그리워서, 뭐니 뭐니 해도 친구들이랑 숨바꼭질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라서 도서관을 찾는다.
“우산이 없어요. 비슷한 게 있긴 한데 내껀 아니에요.” 난감한 표정의 아이를 따라 신발장 앞까지 가본다. 수많은 우산을 하나하나 들춰 봐도 자기 우산이 아니다. 금도끼 은도끼의 산신령이 된 기분으로 금우산을 건네주고 싶어진다. 이미 확인한 터지만 바닥에 깔려 있을지 모르니 다시 찾아보자고 같이 우산들을 뒤졌다. “어떡하니, 우산이 바뀐 것 같은데 이거라도 쓰고 가야 하지 않을까? 비 맞지 말고.”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한 아이는 살 하나 부러진 우산을 들고 빗속을 총총 걸어갔다.
며칠 전엔 5학년 여자아이가 엉엉 울면서 데스크로 달려왔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도서관 직원들도 모두 놀랐다. “벌한테 쏘였어요. 엄마아아….” 이미 눈물범벅이 된 아이는 엄청 놀란 상태다. 목덜미가 동그랗게 부어올랐다. 공원에서 놀다가 물렸단다. 말벌은 아니어서 일단 다행, 우선 엄마랑 통화하게 번호를 불러 보라 하고 상황을 알렸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더 크게 울었다. 일하는 엄마도 안절부절,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한 다음 다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땀에 젖은 머리를 고무줄로 묶어주고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 주었다. 물린 자리를 자꾸 만지면 안 된다고 일러주니 안정을 되찾았다. “벌들이 꽃을 알아보네. 네가 이렇게 예쁘니 말야.” 농담을 건네니 씨익 웃는다. 진정이 되었다는 표시다. 같이 병원 갈까 했더니 걱정하며 달려온 친구들이랑 다녀오겠다고 의젓하게 떠났다.
어디 이뿐이랴. 맨발로 뛰어다니다 가시 박혀서 빼 달라고 오고, 친구가 숨긴 신발을 찾아 달라고 요청하고, 잠깐 책 읽고 있었는데 엄마가 사라졌다고 울고,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잘못해 씻겨 달라고 하고, 넘어져 상처 나면 소독약과 반창고를 달라고 오고, 대나무숲에 남겨진 아기 고양이를 구해 달라고 뛰어온다. 물론,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서가 위치를 못 찾아 도와 달라고 말을 거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놀라고 당황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손 내밀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아이들의 비빌 언덕과 안전지대가 될 수 있다면 어린이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시시콜콜한 요청들에 정신없이 답하면서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자기가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옆에 있어 줄 누군가라는 것을. 이미 잃어버린 우산을 같이 찾아봐 주고, 벌에 쏘이고 놀랐을 때 달래 주고, 배고픈 고양이를 같이 걱정해 주고, 날마다 고양이가 잘 지내는지 숨어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곁을 내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1073일, 죽음과 고통의 봄을 세 번이나 새로 마주하고서야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보니 눈물이 솟구친다. 목이 메어 말을 건넬 수가 없다. 숨죽이며 지켜보는 마음도 이러한데 저 바닷물을 다 마셔서라도 아이를 구하고자 몸부림쳤던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말하지 못하던 것,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경청이라고 배웠다. 건져 올려진 세월호 앞에서 부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길 원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말을 거는 순간 비로소 ‘남’은 ‘너’가 된다. 그러면 ‘나’는 너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고 다시 안녕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곁이 생겨나면 편만 강요하는 사회를 이겨 내는 힘도 여기서 나올 것이다. 경청은 고통의 당사자에게는 사회적 존재감을 돌려주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저항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세월호 3년상을 치른다. 무력함에 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꽃으로 피어 누구도 외롭지 않다고 말해 주는 일일 것이다. 기억의 숲에서 흘린 눈물이 연대와 책임 의식으로 피어나도록 서로 기꺼이 돌봐 주는 일일 것이다. 바라봄, 돌봄, 들여다봄…. 그래서 마침내 진실과 마주하는 봄이기를!
“우산이 없어요. 비슷한 게 있긴 한데 내껀 아니에요.” 난감한 표정의 아이를 따라 신발장 앞까지 가본다. 수많은 우산을 하나하나 들춰 봐도 자기 우산이 아니다. 금도끼 은도끼의 산신령이 된 기분으로 금우산을 건네주고 싶어진다. 이미 확인한 터지만 바닥에 깔려 있을지 모르니 다시 찾아보자고 같이 우산들을 뒤졌다. “어떡하니, 우산이 바뀐 것 같은데 이거라도 쓰고 가야 하지 않을까? 비 맞지 말고.”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한 아이는 살 하나 부러진 우산을 들고 빗속을 총총 걸어갔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놀라고 당황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손 내밀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아이들의 비빌 언덕과 안전지대가 될 수 있다면 어린이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시시콜콜한 요청들에 정신없이 답하면서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자기가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옆에 있어 줄 누군가라는 것을. 이미 잃어버린 우산을 같이 찾아봐 주고, 벌에 쏘이고 놀랐을 때 달래 주고, 배고픈 고양이를 같이 걱정해 주고, 날마다 고양이가 잘 지내는지 숨어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곁을 내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1073일, 죽음과 고통의 봄을 세 번이나 새로 마주하고서야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보니 눈물이 솟구친다. 목이 메어 말을 건넬 수가 없다. 숨죽이며 지켜보는 마음도 이러한데 저 바닷물을 다 마셔서라도 아이를 구하고자 몸부림쳤던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말하지 못하던 것,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경청이라고 배웠다. 건져 올려진 세월호 앞에서 부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길 원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말을 거는 순간 비로소 ‘남’은 ‘너’가 된다. 그러면 ‘나’는 너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고 다시 안녕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곁이 생겨나면 편만 강요하는 사회를 이겨 내는 힘도 여기서 나올 것이다. 경청은 고통의 당사자에게는 사회적 존재감을 돌려주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저항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세월호 3년상을 치른다. 무력함에 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꽃으로 피어 누구도 외롭지 않다고 말해 주는 일일 것이다. 기억의 숲에서 흘린 눈물이 연대와 책임 의식으로 피어나도록 서로 기꺼이 돌봐 주는 일일 것이다. 바라봄, 돌봄, 들여다봄…. 그래서 마침내 진실과 마주하는 봄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