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斑指)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액세서리다. 반지 중에서 가장 특별한 반지는 아무래도 ‘기게스’의 반지일 것이다. 기게스의 반지는 마법을 부린다. 이 반지를 끼는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출 수 있다. 흥미롭게도 ‘기게스의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서양 철학자 중 최고라고 하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유명한 고전에서 이 신비로운 반지의 힘에 대해서 토론하는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기게스라는 평범한 청년은 리디아 왕의 양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하루하루를 왕의 양들에게 풀을 먹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욕심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진으로 벌어진 땅 틈새를 들여다보다가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 속에는 손가락에 금반지를 낀 거인이 죽어 있었다. 기게스는 이 반지를 가지고 동굴을 나왔고, 반지에 숨겨진 마법의 비밀을 알게 된다. 반지를 안쪽으로 돌리면 반지 낀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모습이 다시 나타나는 마법의 반지였다.

이러한 반지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 기게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절대 권력이 자신의 눈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지 양을 치는 것밖에 모르던 양치기가 이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더 이상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한낱 양치기로 살 필요가 없었다.

궁으로 돌아간 기게스는 반지의 힘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투명인간이 되어서 그 동안 섬기던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고 나라를 통치하기에 이른다. 한 순간에 양치기가 왕이 되는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누구라도 양치기보다 왕이 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삶에 관계되는 일이다. 그래서 기게스의 선택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운명까지 바꿀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양치기가 왕이 되어서가 아니고, 정당한 절차 대신에 마법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통치자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공동체에 의해서 승인 될 때만 정당하다. 이제 무엇으로 기게스의 부정한 힘을 막을 것인가? 자신의 능력 대신 반지의 마법을 사용하는 기게스는 부도덕하고 뻔뻔한 일을 아무리 저질러도 두려울 것이 없다. 언제라도 반지를 이용해서 투명인간이 되면 그만이다. 무슨 짓을 한들 결과에 책임을 질 이유도 없다. 기게스에게 반지가 있는 한 그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기게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만일 기게스가 마법의 반지를 손에 넣지 않았다면 평생 양치기로서 별 불평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기게스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반지를 이용해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반지를 발견한 것은 기게스의 잘못이 아니지만 반지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다. 여기에 ‘기게스의 반지’에 담긴 의미의 핵심이 있다.

자신의 욕망을 사유하고 통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 운 좋게 얻은 반지의 마법을 자신의 능력으로 알고, 단순히 ‘들키지 않은 것’을 책임의 면제로 여기는 사유의 무능력을 기게스가 보여 준다. 그의 행동은 옳음과 정의로움은 그저 좋은 평판을 위한 속임수와 도구일 뿐이며 보는 사람이 없다면 옳음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를 통해서 옳은 삶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눈과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를 요청한다. 옳은 것을 조건 없이 지키는 도덕적 능력은 가능한가?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라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권력만 있다면 모두가 기게스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기게스의 반지를 낀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귀가 아프게 듣는 소위 ‘비선’(秘線)이라는 것 또한 곧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가 아닌가. 이들은 우연히 굴러 들어온 힘과 권력을 외면하는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에만 ‘비선’ 거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비선을 통하면 안 될 일도 쉽고 빠르게 된다는 것은 다 아는 비밀이다. 심지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일마저 비선이 없는 사람은 낭패를 보는 세상 아닌가! 우리에게 깊은 분노와 자괴감을 안겨 준 거대한 비선의 실체는 주변의 작은 비선들에 대한 암묵적 동의 속에서 생겨난 괴물일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이익과 편리를 위해서 서로를 비호하며 엮여진 수많은 비선들은 얼마든지 능력 없는 양치기도 왕으로 만들어 낸다. 그래서 비선이 통할수록 마법을 부리는 기게스의 반지를 향한 욕망은 거세진다.

당연하지만 한 조사에 의하면 사회의 정의로움과 행복지수는 비례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정당하고 당당하게 느낄 때 훨씬 행복하다. 누군가의 비선이 되는 것도, 비선을 이용하는 것도 결국 자신과 모두에게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이제 조금 불편해도 익숙한 비선을 끊어 내고, 기게스의 반지를 빼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때다. 우리 자신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