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7월은 한해의 절반을 보내고 후반기의 시작이지만, 교직의 7월은 한 학기 마무리 시기이다. 3월에 학년진급과 신입생이 들어오면 새로운 환경 적응과 친구들 사귀기에 부산하다. 수많은 상담이 이뤄지고 가정방문을 가기도 한다. 교정의 등나무가 칡덩굴이 없으니 갈등(葛藤) 대신에 홀로 녹색 쇠파이프 지지대를 오른쪽으로 감아돌면서 꽃주머니와 열매를 늘어뜨리면 체육대회가 열린다. 대부분 반티(학급별 유니폼)를 맞춰 입고 반별로 특색 있게 입장을 하는데 금년에는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실력이 없지 가오가 없냐?”로 변한 플래카드도 지나간다. 설레던 수련회와 수학여행이 추억을 만들고 나면, 연 초에 사궜던 친구집단들이 조금씩 이합집산을 해서 선생님들을 약간 긴장하게 만든 가운데 새물같은 교육실습 선생님들이 오게 되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면 한 학기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대체로 한 학기의 풍경이 이렇다.

학사 일정은 매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국가 교육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하게 반복된다. 농부의 일기장처럼 몇 년 잘 써놓으면 준비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마음먹고 몇 년간 학교생활일지를 잘 써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러면 전년에 아쉬웠던 것, 금년에 미리 준비할 것, 스스로 더 연마할 연수는 무엇인지,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더 따뜻하게 대할 것이 무엇인지, 이러한 반성과 준비가 반복되면 교직의 좋은 습관이 되어 존경받는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실습생이 다녀갔다. 예전에는 교생이 오면 아주 반갑고 들뜬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고 그냥 답답하다. 곧 함께 교단 생활을 하겠다 싶어 이것저것 전해주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워낙 교직의 문이 닫혀 있어 마음이 무겁다. 교원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범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거나, 교직과목 이수 등 이 3가지가 있는데 금년에는 이 모두에 해당하는 학생이 왔다.

40여년 전 교육학 첫 시간에 백발이 성성한 강모 교수님이 “시계는 ‘라도 시계’가 좋지만, 선생은 ‘라도 선생’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우리는 무슨 말인지 그 뜻을 몰랐다. ‘라도 시계’는 오메가, 로렉스 등 당시 최고급 시계 중 하나이고, 여기저기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다가 안 되면 또는 이 직장 저 직장 다녀보고 썩 마음이 들지 않으면 선생이‘라도’ 해야겠다거나, 5급 을(지금 9급 공무원)이‘라도’ 봐야겠다는 말을 예전에는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을 빗댄 것이었다. 교수님은 바로 이때의 교사를 ‘라도 선생’이라 칭한 것이다. 처음부터 사도를 걷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해보다가 안 되겠으면 선택한 직업이 교사인 경우가 많아 지금과는 판이했다. 당시에는 존경은 더 받았을지 모르지만 직업 선택의 순위로는 뒤졌었다.

더구나 초중등 교사가 부족하여 70년대까지 대학에 임시교원양성소를 설치하여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년을 수료하면 교사가 될 수 있었고, 준교사시험검정으로도 교원을 확보하였다.

또다른 상징적인 자료가 있다. 1977년 서울시는 시 공무원 선발 시험을 6차례나 치렀다고 한다. 조금 근무하다가 다른 직장을 찾아 이직해 버리니까 두 달에 한 번씩 보충한 것이다. 그해 8월 합격자 290명 중 대졸자는 7.9%, 고졸이 74% 나머지는 초급대, 중졸, 국졸이었고 9월엔 대졸자가 4.6%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8년 금융위기 때 “IMF 취업난을 공무원 시험으로 넘자”라는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2013년 9급 시험에 20만명이 몰려, 75:1의 경쟁률을 보였다. 요새 효자는 고교 졸업 후 바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자식이라며 계속 기록 갱신 중이다.

해보다가 안 되면 ‘라도 선생’, ‘5급을’이었는데 이제는 나라의 수재들이 교대 사대로 몰리고, 공시생이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열공하고 있다. 나라 장래에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나는 교생과 이별의 복도에서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다만 훗날 교직과 공무원이 이렇게 줄을 서는 바늘구멍이었고 선망이었다는 오늘의 현실이 희한한 기삿거리가 될 날이 분명 올 것이라 생각했다. 옛날의 서울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