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뭐야? 컨셉이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가 날 보더니 내뱉은 말이다. 이날 나는 등굣길 지하철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친구의 말에는 평소 읽지도 않던 책을 사람들 많은 지하철에서 펼쳐들고 ‘있는 척’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숨어 있었다. 그만큼 나는 책과는 먼 사람이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책과 담을 쌓았다며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곤 했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예능이나 웹툰,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있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당연히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 대신 책을 꺼내든다.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마음에 드는 책을 모으는 것이다. 광주 시내에 있는 서점에서 저렴한 중고 책을 고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할 때도 신간서적을 찾는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책은 어느덧 내 방 책장을 가득 채웠고, 두둑해지는(?) 책장을 볼 때마다 마치 내 지갑이 두둑해진 것처럼 든든함을 느낀다.

내가 책에 빠지게 된 것은 병원생활에서 시작됐다. 약 두 달 전 엄마가 갑작스레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병간호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던 탓에 학교 측에 사정을 말하고 병간호에 나섰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하지만,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병원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사촌오빠가 책 몇 권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

“병원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책이라도 좀 읽어.”

‘책은 뭔 책’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나도 무료한 병원생활이 이어지자 결국 책을 집어들게 됐다. 오빠가 준 책은 병원 얽매어 있는 날 위한 ‘여행서적’이었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 이 세 권의 책 저자인 태원준 작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아시아와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두 권의 책을 냈고, 이후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중남미로 여행을 떠난다. 보기 드문 모자의 여행기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내려간 이 책을 통해 나는 ‘멍∼’ 때리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엄마가 쓰러지기 직전에도 나는 친구들과 베트남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다. 연인 또는 친구들과의 여행을 꿈꿔왔지 엄마랑 단둘이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거기다 배낭여행이라니…. 병실에 누워 잠든 엄마를 보자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때부터다. 독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 뒤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보다는 배낭여행기 등 여행관련 서적을 즐겨 찾게 됐다. 자연스레 ‘배낭여행’ 욕심이 생겼다. 청춘을 무기 삼아 짜여진 일정이 아닌, 배낭을 메고 내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는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벌써 대학 4학년이다. 전공 공부와 과제, 취업준비로 무척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애써 과거의 날 위로해보기도 한다. 또래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탓에 시간이 없어서일 것이다. 전공서적이나 토익문제집 외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나 다름없는 ‘암울한’ 세대이기에….

책을 읽는다고 곧장 학업 성적이 오르거나 취업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맹목적인 대기업, 공무원 취업이라는 시야에서 벗어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행복한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바로 책이다. 몇 권의 책을 더 읽었을 뿐인데,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달라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호기와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열정. 그리고 그런 삶이 분명 더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까지.

과제, 수업, 아르바이트, 취업준비로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고 있는 ‘답답한’ 청춘들에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 ‘나를 위한 삶’을,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는 ‘기회의 열쇠’를 책 속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