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이익의 제자 중에 윤기(1741∼1826)라는 인물이 있다. 서른셋의 나이로 생원시에 급제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좀체 급제하지 못하다가 쉰둘에 겨우 문과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나갔다. 종6품 성균관 전적(典籍)을 거쳐 정3품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이른 것이 여든 살 때였다.

그는 강한 성품 때문에 출세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는데, 강한 성격이란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감지 못하는 선비정신을 뜻한다. 그의 문집인 ‘무명자집’(無名子集)에 ‘지유의 노래’(只由謠)가 있다.

‘지유’란 ‘다만’ ‘겨우’ 등의 뜻인데, 그 중 한 구절이 “땅을 사서 금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비단 팔아서 베옷 입는 사람도 있네/ 물어보자 무슨 까닭인가/ 다만 배부름과 굶주림 때문이지”(買之土成金/賣之錦爲褐/借問緣何然/只由飽與渴)라는 내용이다. ‘지유의 노래’에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겨 있는데, “도척은 장수했는데, 안연은 단명했네”라는 시구(詩句)도 그중 하나이다.

‘장자’(莊子) ‘도척’편에 따르면 춘추시대 대도(大盜)인 도척은 도적 떼 구천 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며 온갖 악행을 자행했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래서 동양사회에서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말할 때 도척과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나 백이·숙제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회나 백이·숙제는 도리를 지키며 살았지만 가난했으며 요절하고 굶어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 ‘백이숙제 열전’에서 도척과 안회, 백이·숙제의 경우를 비교한 후 “나는 심하게 의심한다. 이른바 천도(天道)라는 것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라고 물은 것이다.

조선 중기 좌의정을 역임한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이 ‘참군(參軍) 조필순(曺弼舜)을 조문한다’는 글에서 예로 들은 동네 사람 조필순도 마찬가지다. 조익은 조필순에 대해 “실로 얻기 어려운 양사(良士)였는데, 어찌해서 관직은 겨우 일명(一命·종9품)에 그쳤고,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해 가난의 고통을 가장 심하게 겪었는가”라고 한탄했다.

나아가 “심지어 부처(夫妻)가 며칠 사이에 모두 죽었으니 운명의 불우하고 간난한 것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이 사람에게만 이런 재앙을 내렸는가?”라고 애통해 했다. 이런 경우들을 두고 인명이나 화복은 하늘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록을 먹는 벼슬아치나 지식인들이 이런 운명론에 매달리는 것은 부정하게 모은 재물을 합리화시켜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역대 선비정신을 가진 벼슬아치나 지식인들은 불평등한 제도 개혁에 관심을 두어왔다.

성호 이익의 아들 이맹휴(李孟休·1713∼1751)는 천재로 이름났으나 부친보다 이른 영조 27년(1751)에 사망했다. 이익은 참척(慘慽·자식이 먼저 죽는 슬픔)의 아픔을 딛고 ‘망자 정랑 행록’(亡子正郞行錄)을 썼는데, 그중 이맹휴가 영조에게 올리려고 썼던 ‘봉사’(封事·밀봉한 상소문)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맹휴는 ‘봉사’에서 영조에게 세상을 고르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백성들 중에 배부른 자와 굶주린 자, 따뜻한 자와 오한에 든 자, 일하는 자와 놀고먹는 자가 있게 한다면 비록 어진 어미라도 자식의 믿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맹휴는 세상을 고르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 방법으로 불평등한 것들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양인(良人)과 천민(賤民)을 하나로 합하고, 먼 지역과 가까운 지역을 하나로 합하고, 중앙과 지방을 하나로 합하고, 문인과 무인을 하나로 합하고, 부자와 빈자를 하나로 합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양자를 통합해서 평등한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익은 이 글을 소개하면서 “때를 기다려 임금께 올리기를 바랐는데 뜻을 이루기 전에 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아들의 조사(早死)를 안타까워했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신분, 지역, 빈부의 통합을 이야기했던 개혁적인 선비들이 늘 있었다. 지금처럼 쓰이지 못하고 스러져 갔지만 그 소리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