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5월 이즈음, 인간의 존엄성이 실종됐다. 사람 목숨은 하찮았고, 짓밟혔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소리치고 싸웠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그런데 달라진 것은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짓밟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여전히 바닥을 치고, 인간의 생명은 순간의 이익 앞에 무너지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11년부터 시작돼 이제야 밝혀지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옥시’ 등의 사건은 우리 사회가 사람의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우선으로 삼는지 절실히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1980년 5월 국가폭력보다 더 무서운 ‘자본’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익을 위해, 손실을 피하기 위해 안 되는 것도 되게 한다. 청해진해운은 폐기처분해야할 세월호를 싸게 사들였고, 승객을 많이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수직 증축했다. 그 결과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참사 이후 진상규명, 무엇 때문에 증축했는가, 어떻게 증축허가를 받았는가, 영업이익을 늘이기 위한 목적이었는가 등의 의문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실상 이런 사안은 두번째다. 본질은 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이익을 늘리려고 하냐는 것이다. 돈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결코 생명과 직결되는 결정적인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른 척 해온 시간만 5년, 옥시는 이제야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다고 모든 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옥시는 제품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사와 미세먼지 탓으로 문제를 피해왔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망자와 피해자는 늘어났다. 이 와중에 옥시는 그들의 목숨값으로 업계 1위를 지켜갔다. 이번에도 역시 사람의 목숨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났다.

이에 국민들은 옥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옥시 물품 리스트를 작성해 공유하고 이런 기업은 사라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비슷한 일이 기억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남양유업의 갑질 횡포, 그리고 시작된 불매운동. 사실상 지금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는지, 오히려 매출이 더 증가한 것은 아닌지 문제를 따질 필요도 없이 관심이 없어진지 오래다.

아마 이번 옥시 사태도 비슷하게 될 것이다. 대표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국민은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기업은 한 분기 정도 적자가 발생하겠지만 크게 운영상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해 낼 자신이 있기에 벌인 짓들이니깐. 나의 이런 예상을 뒤집어 줄 기막힌 시나리오는 나타날 수 없을까.

그래서 아주 쉽고 뻔한 방법을 생각해봤다. 어렸을 적 친구와 싸우고 왔을 때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신 사자성어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의미다. 초등학생한테나 먹힐만한 사자성어가 무슨 해결 방법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한 건 어른이다. 내 가족이 중요한 만큼 남의 가족도 중요한 것이고, 내 목숨이 중요한 만큼 남의 목숨도 중요한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참사의 책임 회피도, 기업 대표의 진정성 없는 사과도,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 엄마가 피해자라면, 우리 아들이 이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면, 절대 잊을 수 없고 불매운동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