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는 약 한 달간 태국 여행, 2월에는 2주일간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다. 늘 그렇듯이 자유 배낭여행으로 다녀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여행 환경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디지털의 물결이 거셌다.

예를 들면 숙소. 지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태국에서 배낭 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게스트 하우스는 예약이 필요 없었다. 예약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냥 가서 묻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킹 시스템을 이용해서 2, 3만 원 짜리 게스트 하우스는 물론 1만 원 미만의 도미토리조차 예약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서 카드 번호만 적어 놓고 결제는 현장에서 직접 했다. 노쇼(no show)의 경우에만 카드에서 인출하는데 바가지요금을 씌운다거나 터무니없는 인출도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또한 저가 항공의 시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비좁고 비행시간 내내 불편하지만 싼 항공권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저가 항공이 아닌 경우도 미리 예매하면 엄청나게 싸다 보니 1년 전부터 항공권을 사는 사람들도 보았다. 여행지나 여행 기간에 맞춰 항공권을 끊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싼 항공권을 확보한 후, 거기에 자기 삶, 스케줄을 맞추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 태국의 경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의 유심칩을 갈아 끼운 후 마음껏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자신이 갈 곳을 안내 받는 가운데, 인터넷 카페나 SNS 및 블로그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정보를 얻고 동행자를 현지에서 만난다.

지금은 상식적이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낯선 풍경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휩쓸자 과거의 슬라이드 사진이 다 소용이 없게 된 것처럼 과거의 경험은 점점 쓸모가 없어진다. 베테랑 여행자가 무거운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고 이리저리 살펴볼 때, 초보 여행자들은 구글맵을 이용해서 거침없이 나간다.

오키나와도 상황은 비슷했다. 모두들 저가 항공을 타고 가고 숙소도 미리 예약하고 왔다. 숙소만이 아니라 인터넷 정보를 통해 볼거리, 먹을 것 등에 대해 이미 훤하게 알고 있었다. 낯선 곳이지만 이미 낯선 곳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미 인터넷 사진을 통해서 익숙한 거리를 거닐고 익숙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런 여행은 더 편리하고 안락하고 안전해 보이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단체 여행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자유 여행에서조차 모든 것이 미리 다 짜여 있으면 좀 답답해진다. 잘 보고, 잘 먹고, 잘 구경하는 관광에 머문다면 모르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헤쳐 나가는 자유로운 여행의 재미가 적어진다. 고민하는 가운데 선택과 결단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인내하는 가운데 사람은 성장한다.

그래서 과거에 배낭여행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통과의례였으며 그런 여행을 통해 새살이 돋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또 여행을 마치고 나면 무궁무진한 얘깃거리가 생겼다. 이것이 고전적이며 아날로그적인 여행의 의미이자 보람이었다.

그런데 현대에는 정해진 궤도 안에서 싸게, 많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효율성의 원리가 여행에도 깊이 침투한 것이다.

디지털 여행의 장점은 많다. 모든 게 예측 가능하고 편하고 안락하다. 정보가 다 열려 있으니 일부러 헤매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여행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미리 준비하면서 실수할 확률을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낯선 길, 불확실한 길을 헤쳐 나가는 도전정신은 점점 약해진다. 인터넷에 잘 알려진 곳만 가서 구경하고, 남들과 똑같이 먹고, 비슷한 인증 샷을 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획일성의 굴레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행 환경, 방법, 의식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디지털의 편리함을 취하되 답답한 궤도를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어렵긴 하지만 이런 추세 속에서도 새로운 여행 방법이 생성되고 있다고 믿는다. 삶에서든 여행에서든 아날로그적인 가치는 낡아 보이지만, 미친 듯이 달려가는 속도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걸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 아닐까.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