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응답하는 사회학] '헬 조선'과 '파라다이스 코리아'
2016년 01월 28일(목) 00:00 가가
시대에 따라 감수성도 변한다. 1990년대 초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부르며 텔레비전의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무렵부터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감수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세대라는 말이 생겼다. 그 이후 젊은이들은 X세대에서 N세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호명되었다. 2002년 서울 월드컵대회 당시 젊은이들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곱씹고 있다. ‘지옥 같은 한국 사회’라는 뜻을 담은 헬조선의 ‘헬’이라는 발음 자체가 야유와 조롱의 감정을 표출하는 듯하다. 그런데 왜 헬코리아가 아니고 헬조선인가? 코리아가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이라면 조선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과거를 연상시킨다.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찾기 힘든 일자리,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미래, 그래서 이것도 포기하고 저것도 포기한 젊은이들이 내뱉는 고통의 소리, 그것이 헬조선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사람들은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너도나도 열심히 뛰었다. 수출이 늘어나고 한국 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각자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도표의 화살표는 항상 상승할 것으로 생각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화살표가 갑자기 하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된다!’라는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은 토익 점수를 비롯한 스펙을 쌓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그런 세월 이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3포 세대에서 시작해 5포 세대와 7포 세대를 거쳐 n포 세대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이제 젊은이들은 직장,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인간 관계, 꿈과 희망 등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포기하는 세대로 호칭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떠나 동남아시아나 유럽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한국은 아직도 살기 좋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완만하지만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실업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낮은 편이며, 삼성·엘지·현대 같은 잘 나가는 기업들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무엇보다도 밤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밖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국 사회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인 수치와 주관적인 체험 사이의 간격이다. 열심히 뛰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깨지고 난 다음의 환멸감, 그것이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심리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기대가 큰 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한 만큼, 환멸감과 분노는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시장이 축소되고 악화되면서 젊은 세대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헬조선을 감수하라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기성세대의 그 흔한 말 “노력을 더 하라는 말인가?” 이제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세상 살아가는 일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응답을 요구한다면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자기 인생을 ‘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삶의 주체가 되자.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탓한다고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갈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둘째로 다수를 따르는 모방의 삶을 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창조적 소수’의 삶을 모색하자.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 기준과 행복의 조건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재단하지 말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자.
셋째로 함께 그런 길을 걸을 친구와 연인을 만나자. 세상의 주류를 따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이상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파라다이스 코리아’는 없다. 현실에는 늘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고통을 극복하면서 삶의 주체가 되어 ‘창조적 소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 사이의 ‘희망의 연대’가 이루어질 때라야, 정책도 바뀌고 사회구조도 변하면서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변모해 갈 것이다.
<사회학자·작가>
1960년대 이후 한국 사람들은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너도나도 열심히 뛰었다. 수출이 늘어나고 한국 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각자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도표의 화살표는 항상 상승할 것으로 생각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화살표가 갑자기 하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된다!’라는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외국 사람들이 밖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국 사회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인 수치와 주관적인 체험 사이의 간격이다. 열심히 뛰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깨지고 난 다음의 환멸감, 그것이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심리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기대가 큰 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한 만큼, 환멸감과 분노는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시장이 축소되고 악화되면서 젊은 세대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헬조선을 감수하라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기성세대의 그 흔한 말 “노력을 더 하라는 말인가?” 이제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세상 살아가는 일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응답을 요구한다면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자기 인생을 ‘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삶의 주체가 되자.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탓한다고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갈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둘째로 다수를 따르는 모방의 삶을 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창조적 소수’의 삶을 모색하자.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 기준과 행복의 조건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재단하지 말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자.
셋째로 함께 그런 길을 걸을 친구와 연인을 만나자. 세상의 주류를 따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이상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파라다이스 코리아’는 없다. 현실에는 늘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고통을 극복하면서 삶의 주체가 되어 ‘창조적 소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 사이의 ‘희망의 연대’가 이루어질 때라야, 정책도 바뀌고 사회구조도 변하면서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변모해 갈 것이다.
<사회학자·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