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내내 화제다.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쇼팽 콩쿠르를 준비했다는 조성진씨의 인터뷰를 접하면서 오래전 보았던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가 동시에 겹쳐진다.

영화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2000)의 실화다. 지인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던 주인공이 빈 집에서 마주한 피아노 앞에서 허공을 향해 연주하던 장면이나, 폐허에서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 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피아니스트로서 마지막을 각오하고 연주하던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멎을 것 같다. 그렇게 눈물겨운 연주로 전한 피아노곡이 쇼팽의 녹턴과 발라드였다. ‘쇼팽이 21세기에 환생했다’는 격찬이 아깝지 않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유럽 현지 중계방송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고단한 영혼이 축복받는 느낌에 잠겨본다.

춤, 음악 등 동적이고 시간적인 예술을 색채표현으로 즐겨 포착해 온 앙리 마티스(1869∼1954)의 ‘피아노 레슨’(1916년 작)도 피아니스트가 거쳤을 과정이라 생각하니 정겹게 다가온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등 뒤에 앉아있는 인물은 아마도 레슨 선생님일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닦아온 실력을 뽐내는 자녀의 연주모습에 대견해하는 엄마일지도 모른다. 매끈하게 붓질을 한 잿빛, 초록, 분홍의 큼직한 색면은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화면 속 인물의 감성을 실은 색채이었을 것이다.

“마티스는 색, 피카소는 형태. 하나의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두 화가” 칸딘스키의 표현처럼 피카소의 입체파가 형태에 집중하여 실험을 하였다면, 야수파의 수장이었던 마티스는 감정적 요인이나 회화를 이루는 색들 간의 균형에 관심이 많았다. 강렬한 색채, 대담한 구도와 충격적인 장식을 기꺼이 구사했던 마티스의 미의식은 한 세기를 넘어서도 여전히 새롭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