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을 걷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수목들도 보이지 않는다/모두가 혼자이다/…/안개 속을 걷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모두가 혼자이다”〈헤르만 헤세 작 ‘안개 속에서’중에서〉

아침 출근길, 안개가 자욱해서 가을 안에 들어와 있음이 느껴진다. 안개 낀 날이면 지금도 반사적으로 학창시절 암송했던 헤세의 시가 연상되는데, 고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고독을 멋으로 알았던 그 시절이 안개처럼 가물거린다.

안개와 함께 떠오르는 그림도 있다. 잭슨 폴록(1912∼1956)의 작품 ‘가을의 리듬’(1950년 작)에는 몽롱한 가을 안개 이미지가 가득하다. 지금이야 이 그림에서 가을을 찾을 수 있지만 솔직히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가을도, 리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흰색, 검은색, 밝은 갈색, 청회색 등 네 가지 색의 물감이 얼기설기 이어지고 휘어질 뿐 미적 대상도 아니었고, 감동도 없었던 것 같다. 자유분방하고 무의식적인 표현이 낯설기까지 했다. 모름지기 회화란 사물이나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잭슨 폴록은 캔버스를 벽에 세우는 대신 바닥에 눕히고 아예 그림 속에 들어가 물감을 흘리고, 뿌리고, 쏟으면서 그리는 드리핑 페인팅,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하다. 커다란 캔버스와 화면에 중심적인 구도를 설정하지 않고 전체를 균질하게 표현하는 올 오버 페인팅도 잭슨 폴록 작품의 특징이다. 어려서 그랜드 캐넌의 가장자리를 측량하는 일을 하는 아버지를 도왔던 경험이 미국적 공간과 크기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고 한다.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에 영향을 미친 미술운동으로 이로부터 뉴욕이 파리 대신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개척했던 잭슨 폴록의 첫발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막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의 시간이 미술사에 큰 전환을 만드는 창조적 에너지를 잉태했을지 모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