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에서 신비감과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의 배경을 금빛으로 가득 채웠던 것은 중세 비잔틴미술의 양식화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금빛은 찬란했지만 원근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밋밋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중세미술의 금칠을 걷어냈던 조토(1267∼1337)는 푸른색으로 원근과 명암을 시험하면서 현실적인 배경을 묘사하기 시작했고, 그 까닭에 르네상스 미술을 연 위대한 화가로 손꼽힌다.

어쩌면 중세 이래 황금색을 가장 잘 다루었던 화가는 작품 ‘키스’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일 것이다. 금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클림트의 작품들은 황금색의 광휘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히는 클림트의 초상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1907년 작)도 눈부시게 화려한 황금빛 배경으로 인해 중세미술의 비잔틴 이콘화를 상기시킨다. 클림트의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한 이 그림은 황금으로 뒤덮인 가운데 슬프고도 오묘한 눈빛이 비밀스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이 작품은 아예 ‘황금의 귀부인’이라는 의미의 ‘우먼 인 골드’라 불리기도 했다. 그림 제목이 ‘우먼 인 골드’로 바뀐 까닭을 알게 된 건 한 편의 영화 덕분이다.

영화 ‘우먼 인 골드’는 나치가 약탈한 한 유대인의 미술품 반환 소송을 소재로 한 것으로, 그 초상화를 약탈하는 과정에서 편의에 의해 붙여진 작품명이었던 것이다. 8년 소송 끝에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었던 이 그림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기까지의 여정과 나치를 피해 가족과 헤어지면서 받은 상처, 잃어버린 과거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의지가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현재 이 작품은 2006년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이 1500억원에 구입해 뉴욕 맨하탄 노이에 갤러리에서 대중들에게 늘 공개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