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도였지만, 학창시절엔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라 불리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이 단지 “태양이 뜨겁다”는 이유로 살인하게 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조리의 의미를 받아들이기에 당시 너무 어렸거나 지적으로 단순해서였을 것이다. 인간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동시에 얼마나 위대한지 그 모순 사이에 놓여있는 부조리를 조금은 알게 된 지금 그 시절이 무색해져 웃음이 나온다.

올해처럼 뜨거운 여름엔 태양 아래 잠시 서있기만 해도 금세 녹아버릴 것만 같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으로 건조해진 정신이 아무 것도 하기 싫게 만드는 무력감도 안겨준다.

20세기 미국인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해 온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작품 ‘여름’(1943년 작)에는 쨍쨍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이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인의 모습과 텅 빈 거리, 건물에 새겨진 빛과 그림자, 밝은 빛 속의 우울한 분위기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어 불안감마저 환기시켜 주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다지 인간적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집 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었다.” 호퍼가 밝힌 것처럼 화면 속 인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인물의 표정이나 역할을 강조하기보다 뜨거워서 적막감마저 들게 하는 여름날 햇빛이 그림 속 공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퍼는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 외딴 시골집에서 아내와 살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밤샘하는 사람들’ ‘주유소’ ‘자동판매기’ ‘뉴욕의 사무실’ 등 대표작을 통해 도시민 삶의 한 모습이기도 했던 고독과 상실감, 소외감 등을 캔버스에 담았다. 자연이나 도시 환경 속에서 부대끼는 현대인들에 대한 화가의 세심한 응시는 후배 화가들과 알프레드 히치콕, 마틴 스콜세지 등 영화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