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에서 안식을 구했지만 찾지 못했다. 다만 작은 책 한 권을 들고 구석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예외였다’

독일 신비주의의 조용한 실천가이자 사상가로 이름 높은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글귀가 특히 올 여름 가슴에 와 닿는다. 오랜만의 휴가로 모처럼 긴 여유를 갖게 되었지만, 내게도 한 여름 뜨거운 열기를 피하면서 안식할 수 있는 곳은 책을 들고 쪼그려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는 읽고 싶은 책을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아두기만 해도 행복하고, 제목만 읽고도 다 읽은 것 같은 허세를 부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래저래 자발적 고립으로 책읽기에 몰두하는 건 꽤 만족스런 피서다.

독일 출신의 카를 슈피츠베크(1808∼1885)의 ‘책벌레’(1850년 작)는 이런 상념에 젖어있을 시점에서 만난 반가운 그림이다. 책에 퐁당 빠져 사는 사람이라면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천장 끝까지 책이 가득한 서가에서 사다리에 올라선 책벌레는 왼쪽 겨드랑이와 다리 사이에도 이미 읽으려고 선택한 책을 한권씩 끼워놓은 상태에서 양손에 책 한권씩을 들고 있다. 그러고도 더 필요한 책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서 사다리에 선 채로 오랫동안 책을 읽을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는 뮌헨대에서 약학을 전공하였으나 부유한 부친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 소박하고 솔직한 자연관조에 바탕을 둔 거리 풍경이나 소시민의 일상생활의 애환을 즐겨 그렸으며 특히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외골수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았다.

다시 보아도 책에 온전히 집중해 있는 진정한 외골수의 모습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좋아하는 책 속에 파묻혀 사는 그림 속 ‘책벌레’에게 대리만족 해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