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이라면 수출 장려 표어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을 거다. 학창 시절, 우린 그렇게 수출지상주의자로 길들여졌다. ‘수출 보국’, ‘수출은 국력의 총화’란 말은 너무나 당연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한국, 한국인에게 수출은 ‘신앙’이자 ‘신화’였다. 수출만이 살 길인 양 한국은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런 태도는 21세기에 들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의 수출 강박증은 ‘경제 영토 확장’이란 명분을 탄생시키며 강대국들과의 연이은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이어진다. 그 핵심에 수출이 있었다. 수입이 더 늘어날 거라는 우려는 수출지상주의에 의해 자연스레 덮였다.

한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출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6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5월에는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10.9%나 감소했다. 한국의 수출이 두 자릿수 이상 줄어든 것은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경제가 휘청대던 2009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다행히 6월엔 수출 감소 폭이 다시 한 자릿수로 줄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대들보가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13년 4월, 미국의 한 경영 컨설팅 회사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한다. 흔히 매킨지 보고서라 불리는 이 문서의 제목은 ‘한국 스타일을 넘어 신성장 공식의 형성’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참담하다. “지금 한국 경제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매킨지는 수출에 편향된 한국의 성장모델이 수명을 다했다고 경고했다. 하루라도 빨리 내수를 축으로 한 성장모델로 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거라 전망했다. 사실 한국이 내수를 키워야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거란 충고는 수많은 연구기관, 경제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바다. 하나, 한국은 그 고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수출 위주의 경제 정책을 고수해 오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내수는 고사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경제도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그 원인으로 꼽지만 이들은 징후이지 원인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전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보통 사람들의 지갑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3.7%에 달했다. OECD 회원국 중 6위 수준이다. 훌륭하다. 한데 만나는 사람마다 “살기 힘들다”고 한다. 왜일까. 극단적 수출 지향의 경제는 극소수 수출기업들의 배만 불렸을 뿐이다. 성장의 과실이 근로자, 관계 회사, 지역사회 등에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지 않다. 근로자들은 생산성을 높여 성장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들의 주머니는 좀처럼 채워지고 있지 않다.

노동생산성 증가 폭을 실질임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 민간연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즉 시간당 생산량은 연평균 2.71% 상승했다. 하나, 같은 기간 시간당 실질 임금의 연평균 상승률은 0.56%였다.

노동생산성이 실질 임금 증가율을 다섯 배나 앞지르고 있다. 재주는 노동자가 부리고 돈은 다른 쪽이 챙기고 있다. 벌어들인 과실 대부분이 극소수 대기업의 금고에 쌓이고 있다. 또 이들 기업의 경영자나 오너들 주머니로 흘러갔다. 소수의 지갑은 두둑해진 반면 다수의 주머니는 그대로다. 이러니 내수가 살아날 리가 있겠는가.

이젠 ‘수출만이 살 길’이란 명제를 돌아봐야 할 때다. 수출 편향의 경제 구조는 매우 위험하다. 우리가 아무리 잘 해도 다른 나라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수출은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타국과의 경쟁에서 언제나 이길 수도 없다.

좀 더 주체적인 경제를 위해서라도 서둘러 수출 비중을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해, 내수를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야 한다. 수출에만 목을 맬 게 아니라 그로 인해 얻어지는 과실의 공정한 배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말라가는 한국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책이다.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