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작 ‘내가 만난 이중섭’ 중에서〉

그 동안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임에도 참 무심했던 것 같다. 올해 처음으로, 광주국제영화제(5월14일∼18일)에 관심을 갖고 레드 카펫 행사와 개막식에 참석하고, 110편의 상영영화 가운데 세 편을 관람했다. 일본의 사카이 아츠코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는 감독의 일성처럼 “대단한 사랑에 전율”하게 해서 여운이 오래오래 남는다.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은 그간 평전도 나왔고 몇 차례 전람회와 서귀포 미술관과 기념관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편이지만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1921∼ )는 화가의 애절한 편지 속 인물로 실체감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영화에서 93세 화가의 아내는 미술대학에서 화가를 만났던 순간과 한국에서의 결혼, 6·25전쟁 중이던 1952년 피란생활을 하던 가족이 경제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화가를 남겨두고 동경으로 떠나야했던 사연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홀로 남겨진 화가는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했던가. 절망과 고독과 애련의 마디마디는 화폭에 옮겨졌다.

작품 ‘길 떠나는 가족’(1954년 작)은 화가가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워 평화와 행복의 남쪽나라로 떠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헤어져있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삽화로 그렸던 것을 캔버스로 옮긴 것이다. 그림의 테두리는 젊은 시절 화가가 영향을 받았던 조르주 루오(1871∼1958)가 즐겨 쓰던 기법을 응용한 것으로 가족을 그릴 때 자주 애용하기도 했다. 화가는 서울에서 개인전이 성공하면 곧 가족을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역사상에 나타난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거요.” 동경에서 영영 오지 않는 아내를 향한 화가의 고백에, 그 사랑에 눈물이 났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