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혀버린 필터링 프로세스
2015년 05월 15일(금) 00:00 가가
서윤영의 '집과 사람'
얼마 전 공동주택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집이 공개되었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이었고, 아울러 상위 10개의 주택도 함께 발표되었는데 주로 다세대 주택, 일명 고급빌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 및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한동안 침체되었던 부동산 시장이 기지개를 켠다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고, 그 동안 찬밥 신세였던 중대형 아파트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철저히 아파트 위주요 또한 고급주택 위주인데 그 이유는 정부가 주택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주로 필터링 프로세스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이다.
필터링 프로세스는 ‘주택여과정책’이라고 옮길 수 있다.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 중산층이 그 집에 들어와 살다가 저축을 통해 더 나은 집으로 이주하고, 빈 주택에는 그 아래 계층이 이사를 들어오게 된다. 이후 그 사람들도 돈을 모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더 아래계층이 사람들이 이사를 들어오는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지속적인 주거의 질 향상과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론이 바로 필터링 프로세스이다.
이는 정부가 투자를 늘려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우선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 경제가 발전하고 또한 모두의 경제수준이 향상된다는 ‘낙수효과’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위에서 뿌린 물이 아래로 차츰 내려와 바닥까지 적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1960년대 서울의 마포아파트는 14∼17평 아파트였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독신자용 원룸이나 신혼부부용 투룸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중산층 아파트였다. 1970년대 서울 여의도와 반포에 들어선 아파트는 20∼24평 내외였는데 당시 호화아파트라고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에는 50∼60평 아파트가 등장했고, 2000년대에는 100평 안팎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도 등장했다. 이렇게 아파트가 점점 대형화되면서 20평 이하의 소형아파트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33평 아파트가 어느새 국민주택이 되어 버렸다.
이를 통해 보면 필터링 프로세스는 매우 타당성이 있는 이론 같지만, 실제로 상류층을 위한 고급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고 해서 서민층의 주거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가장 아래까지 내려가야 할 물줄기가 어느 수준에서 막혀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낡은 주거지를 재개발하여 아파트 단지를 지을 경우, 재개발 구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은 대략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분담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주 보상금을 쥔 채 인근의 더 저렴한 집이나 더 변두리의 집으로 이사를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낙수효과의 그 낙수는 결국 바닥까지 적시지 못하는 것이다.
낙수효과는 주택정책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효과를 의심받고 있다. 이는 1989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한 이론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그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레이거노믹스 및 MB노믹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낙수효과가 처음 주장되었던 1989년은 세계경기가 매우 호황으로 돌아가던 시절이어서 그 이론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200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저성장 시기에 돌입하면서 대기업의 투자분야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소비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생산자들은 부유층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더 고급스럽고 더 비싸며 더 새로운 상품을 내어놓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급격히 유행했던 00팰리스 류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최근 유행하는 타운하우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이름조차 생소한 고급빌라 등이 그것이다. 이는 소량만 판매해도 그 이윤이 높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판매보다 훨씬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불황일수록 명품과 사치품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소비의 양극화가 일어나는 이유이며, 고급주택은 계속 지어지지만 정작 서민들의 주택은 전셋집도 구하기 힘들어 더 작은 집으로 더 변두리로 밀려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주택정책은 보금자리 주택 혹은 행복주택으로 부리는 임대주택, 사회주택이 대부분이다. 주택도 점차 양극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필터링 프로세스 즉 소비의 낙수효과는 점점 기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건축칼럼니스트>
요즘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 및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한동안 침체되었던 부동산 시장이 기지개를 켠다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고, 그 동안 찬밥 신세였던 중대형 아파트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철저히 아파트 위주요 또한 고급주택 위주인데 그 이유는 정부가 주택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주로 필터링 프로세스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1960년대 서울의 마포아파트는 14∼17평 아파트였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독신자용 원룸이나 신혼부부용 투룸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중산층 아파트였다. 1970년대 서울 여의도와 반포에 들어선 아파트는 20∼24평 내외였는데 당시 호화아파트라고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보면 필터링 프로세스는 매우 타당성이 있는 이론 같지만, 실제로 상류층을 위한 고급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고 해서 서민층의 주거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가장 아래까지 내려가야 할 물줄기가 어느 수준에서 막혀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낡은 주거지를 재개발하여 아파트 단지를 지을 경우, 재개발 구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은 대략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분담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주 보상금을 쥔 채 인근의 더 저렴한 집이나 더 변두리의 집으로 이사를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낙수효과의 그 낙수는 결국 바닥까지 적시지 못하는 것이다.
낙수효과는 주택정책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효과를 의심받고 있다. 이는 1989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한 이론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그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레이거노믹스 및 MB노믹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낙수효과가 처음 주장되었던 1989년은 세계경기가 매우 호황으로 돌아가던 시절이어서 그 이론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200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저성장 시기에 돌입하면서 대기업의 투자분야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소비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생산자들은 부유층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더 고급스럽고 더 비싸며 더 새로운 상품을 내어놓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급격히 유행했던 00팰리스 류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최근 유행하는 타운하우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이름조차 생소한 고급빌라 등이 그것이다. 이는 소량만 판매해도 그 이윤이 높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판매보다 훨씬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불황일수록 명품과 사치품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소비의 양극화가 일어나는 이유이며, 고급주택은 계속 지어지지만 정작 서민들의 주택은 전셋집도 구하기 힘들어 더 작은 집으로 더 변두리로 밀려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주택정책은 보금자리 주택 혹은 행복주택으로 부리는 임대주택, 사회주택이 대부분이다. 주택도 점차 양극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필터링 프로세스 즉 소비의 낙수효과는 점점 기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건축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