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다녀오느라 KTX를 탔다. 마침 호남선 KTX 개통 이틀 후여서 서울은 이미 심리적으로 가까워져 있었다. 여느 때처럼 주차장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이용객이 늘어서인지 주차난에 송정역과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골목에 가까스로 차를 세웠다.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초인적으로 뛰었다가 거의 심장이 터져버릴 뻔 했다. 1시간 여 빨라진 고속철도의 속도를 온 몸으로 먼저 체험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빠른 기차 속에서 ‘속도’를 그린 화가가 떠올랐다. 영국의 국민화가 윌리엄터너(1775∼1851)는 작품 ‘비·증기·속도(대서부철도)’(1844년 작)를 통해 폭우와 안개 속을 뚫고 맹렬한 속도로 템즈강 맞은편 철교 위를 질주하는 기차를 그렸다. 배경이나 풍경을 무시하고 기차와 아치형 철교의 기본 형태만 남겨놓은 화면에서 돌진하는 기차는 대각선을 따라 화폭 밖의 우리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올 기세다.

당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던 영국은 증가하는 원료와 제품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증기기차와 증기선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속도는 많은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주었을 것이다. 화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듯하다.

실제 터너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비가 오는 날 런던에서 항구도시 엑스터로 가는 대서부철도 기차를 탔다. 비를 뿌리는 대기와 자연의 풍경, 기차의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터너는 차창 바깥으로 몸을 내밀고 오랜 시간 관찰했다고 한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미스터 터너’에서 작품을 위해 자신의 몸을 폭풍우가 치는 배에 매달아 태풍의 모습을 묘사하려 했던 터너의 열정이 겹쳐진다.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 등 많은 지역으로의 여행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받아왔던 터너에게 자연은 인간의 감정이 반영된 동적인 세계였다. 터너는 자연의 빛과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작품에 탁월하게 담아냈고, 그로 인해 낭만주의자로 출발했지만 인상주의 미술의 도화선이 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