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 그림 앞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림을 매개로 그들과 소통하는 순간이다.”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추상화를 보고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림이 과연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을까?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유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 인간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직시하게 할 수 있는가”에 예술의 의미를 두었다. 유대 출신 로스코는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비극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답게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비극적 정서에 동화되기를 원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회고전’이 화제다. 전람회를 다녀온 주변의 몇몇은 숨 막힐 듯 밀려드는 격정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렸다는 소회를 들려준다. 그 작품 앞에서 눈물 흘리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림 앞에서 잠시 부끄러워졌다.

로스코의 작품 ‘무제(레드)’(1970년작)는 그가 자살 직전에 남긴 그림으로 화염이 몰아치는 듯한 주홍빛이 마치 화장터의 불길을 연상케 한다. ‘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불린다. 로스코는 미술입문 초기부터 다양한 미술 운동이나 장르의 용광로와도 같았던 미국화단에서 빗겨나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한다. 리얼리즘, 초현실주의시기를 거쳐 색채로 규정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그림 자체라는 인식의 전환으로 색면 회화에 파고들게 된다. 색면의 크기와 색채의 농도를 수없이 조합시키면서 여러 색면의 층들을 켜켜이 덮고 또 덮었다.

미술사학자 샤이먼 샤마교수(컬럼비아대)는 저서 ‘파워 오브 아트’에서 로스코의 예술세계를 한마디로 “말없이 그저 절절한, 색채와 감정의 드라마”로 규정한 바 있다.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그 절절함에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