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찾다가/텃밭에/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예쁜 여자랑 손잡고/섬진강 봄물을 따라/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김용택 작 ‘봄날’〉

봄날 나물 캐기 좋아하는 친구 따라 양동 시장 철물전에 나물 칼 사러갔다가 덩달아 토종 호미까지 한 자루 샀다. 호미를 사고 보니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에 감탄했던 박완서 작가의 산문 ‘호미예찬’이 떠오른다. 농촌의 풍물과 함께 여성적이면서도 야무진 호미가 등장하는 옛 그림도 생각난다.

청고 윤용(1708∼1740)의 ‘나물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는 여인’은 망태기를 멘 여인이 자루가 긴 호미를 든 채 허공을 응시하며 뒤돌아서있는 그림이다. 머리에는 넉넉하게 수건을 쓰고 동여맸으며 작은 키, 다부진 몸매, 속바지 아래로 드러난 건강미 넘치는 종아리와 짚신 차림은 일하는 농촌 아낙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인이 바라보는 텅 빈 들녘에서는 그림 곁에 따로 딸린 화제시처럼 ‘푸릇한 봄의 무한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뒷모습일 뿐인 여인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몹시 궁금해진다.

청고는 공재 윤두서의 손자로 아버지 윤덕희와 함께 할아버지 화풍을 이어받으면서 3대에 걸친 선비화가 집안의 명성을 이뤘다. 33세로 요절한 탓에 많지 않은 유작 가운데 속화로는 이 작품 한 점을 남겼다

미술사학자 이태호교수(명지대)는 저서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에서 “화면 오른쪽 여인의 어깨 높이에 써넣은 ‘군열(君悅)’이라는 청고의 ‘자(子)’는 진한 먹의 굵고 날카로운 서체가 마치 이 여인이 쥔 호미로 땅을 팍팍 긁어놓은 것 같다”고 읽으면서 “화면의 근경에 뒷모습의 사람을 등장시키는 방식은 보는 이를 그림 속에 끌어들이는 수법으로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에 계승된다”고 설명한다.

그림 속 여인을 보노라면, 흙 묻은 호미 내던지고 꽃 마중 나선 시인과는 반대로 하던 일 모두 덮고 시골 밭두렁으로 달려가고만 싶어진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