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뜨면 오시겠다 말해 놓고서/달떠도 우리 임은 오시지 않네/아마도 우리 임 계시는 곳엔/산이 높아 저 달도 늦게 뜨나 봐” 〈능운 작 ‘달을 기다리며’〉

며칠 전 친구에게 시집 선물을 받았다. 시낭송 모임도 자주 다니는 친구다. 시를 읽는 대신 ‘손자병법’이나 ‘십팔사략’등을 접하고 있다는 나의 근황을 듣고 친구는 “강퍅해졌다”느니 “전쟁터에라도 나가냐”느니 하며 안쓰러워했다. 시집을 사거나 읽고 선물하기를 즐겨했던 나 자신이 시로부터 멀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겨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울은 아무래도 자연의 심술이나 매서움이 있다. 감성도 움츠려들게 한다. 요 며칠 사이 중외공원에 피기 시작한 홍매를 만나고 나서야 좋아했던 시도, 시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도 되살아난다. 오늘 밤, 정월 대보름달 아래 은은하게 피어있을 홍매를 상상하니 마음에 담아두었던 시도 꺼내보고 싶고 그 풍경을 담았을 그림도 챙겨보게 된다.

조선 중기의 화가 어몽룡(1566∼?)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월매도(月梅圖)’는 달빛 아래 단촐한 형태의 매화를 운치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늙은 매화 둥치에서 뻗어난 매화 가지의 고아한 꽃봉오리가 임을 향한 마음인 양 달빛에 젖어있는 듯하다. 달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작품 ‘월매도’는 이른 봄과 달밤의 애틋한 서정이 정말로 잘 어우러져 그윽하게 마음을 비춘다.

매화그림으로는 조선 제1인자로 평가받으면서 황집중의 포도그림, 이정의 대나무그림과 함께 조선 중기 ‘문인화의 삼절(三絶)’로도 꼽혔던 어몽룡의 또 다른 ‘월매도’ 한 점은 5만원 권 지폐에 등장한다. 매화가 핀 뜨락을 찾아 떠나는 ‘탐매행(探梅行)’이 여의치 않은 봄날이거든, 5만원 권 지폐 속 묵매도라도 자주 들여다보리라.

〈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