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테일(긴 꼬리) 경제학’이라는 용어가 있다. 시장에 상품을 내다 팔 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제품을 기획해야 한다는 상식과 달리,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더 유리할 때도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기획이 시청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방송 채널이 늘어서 방송 시장 자체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 되었다면, 이런 특색 없는 프로그램은 외면당하기 쉽다.

이때 노인, 주부, 청소년과 같은 특정 세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최소한의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보편적인 주제보다 자극적이거나 지나치게 편향된 소재를 다루는 이유도 바로 이 롱테일 전략의 하나인 셈이다.

한데 문제는 이런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한 전략은 지나친 편향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종편에서 무속인을 등장시켜 대통령과 김정일의 궁합을 본다든지, 혹은 특정 정치인에 대해 내리막길을 걷는 운세라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이 경우 방송의 목적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일반 상품 판매와 달리 방송은 공공자산이다. 제한된 전파 자원을 특정 방송사가 할당받아 임의로 사용한다는 것은 모두의 것을 사유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방송을 공적 영역으로 취급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를 망각할 경우 국가는 당연히 전파 사용 권리를 회수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란 고도의 공적 영역이다. 정치는 국가의 기본 질서와 운영에 개입하며, 정치인은 그 개입의 주체다. 따라서 정치인은 늘 언사와 태도에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정치인이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선택되었다고 가정하자. 이때 그는 해당 계층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일차적 역할뿐만 아니라 소속 정당의 가치와 이념을 대표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도 동시에 가지며, 아울러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책임까지 주어진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롱테일 경제학을 원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당의 지지자 중에는 소수의 원리주의자가 항상 존재한다. 정강이나 이념에 강력한 색깔을 반영하길 원하는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대개 정당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지만 이들의 의견이 전체의 의견은 아니다. 한데 이들만을 자신들의 지지 기반으로 삼는 정치인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특정 정당의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득표전에 승산이 보이지 않을 경우, 이 긴 꼬리를 겨냥한 누군가가 강경한 구호만을 내세운다면 그는 소수의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지도부에 입성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다. 정당이 집권하는 데는 긴 꼬리가 아닌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집권에는 롱테일 경제학이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국민이 수권정당임을 인정하고 정권을 맡기기 위해서는 정당의 정강 정책과 아울러 그 소속 구성원의 태도와 자질을 눈여겨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정당 지도부의 일원이 언론의 시선을 끌기 위해 튀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동일시된다. 그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긴 꼬리를 붙들고 공천이나 당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해당 정당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게 되는 셈이다.

‘입안에 도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쓰레기통 같은 정치판이라 해도 정치 역시 결국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꽃은 고사하고 도끼만 날아다니는 모습에 국민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해당 정당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철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롱테일 경제학은 소수를 향해 특정 물건을 판매하거나 상품을 알리고자 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지, 방송이나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는 절대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개념인 것이다.

<지식나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