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때, 설날이면 큰집을 찾아가 집안 어른들께 세배 드린 후 세뱃돈을 받아 또래 사촌들이 모여 있는 젊은 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윷놀이를 하거나 밖에 나가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이 난다. 식사 시간이 되면 대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먹어도 먹어도 끊이지 않는 명절음식을 먹었다. 물론 새해 덕담와 함께 받는 세뱃돈이 무엇보다 쏠쏠한 즐거움이라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언제부터인가 설날의 이런 가족 풍경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인사를 드리고 방에 들어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얼굴 앞에 둔 채 아는 체를 한다. 심심하다고 밖에 나갈 필요도 없다. 핸드폰 속 수많은 멀티미디어들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거실에 놓인 스마트TV도 다양한 여흥거리를 제공해준다. 주변 친구들 또한 그 변화를 느끼는 것을 보면 비단 우리 가족만의 변화는 아닌 듯하다. 우리끼리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을 너무 빨리 접해서 걱정이야!”라며 더 어린 세대를 걱정하기도 한다.

글로벌세상이 도래함에 따라 소통능력이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남을 이해하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모습 자체가 굉장한 경쟁력인 시대다. 스마트폰이 상용화됨에 따라 우리는 양질의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고 더 이상 일방향 정보 공유가 아닌 양방향 정보 공유가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어느 시대보다 소통이 중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시대보다 명절에 대화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액정화면 속 편안하고 안락한 유리감옥의 생활에 우린 이미 익숙해져 있다. 학교를 가는 버스 안에서도, 친구를 만나면서도, 수업 중에도, 수업 후 짧은 쉬는 시간에도, 밥을 먹으면서도 그리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된다. 그 익숙함이 이미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편리하기 때문에 주변의 감사한 모든 것들에 대해 무신경해진다. 당장 새롭고 편리한 것에만 신경을 쓰는 나머지, 정작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는 무심히 여기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나 또한 그 유리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된지도 벌써 두 달 째다. 민족대명절인 설날도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새해에 계획했던, 작심삼일로 끝났을 수도 있던 다짐들을 다시금 정비해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 계획 중 하나로 이번 설날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라는 익숙함을 조금 낯설게 바라보면 어떨까? 액정화면이라는 유리감옥에서 고개를 살짝만 들어보면 내 곁에서 나를 항상 사랑해주시는 부모님, 나에게 반가움과 즐거움을 주는 사촌들, 먼발치에서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친척들을 볼 수 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 내가 얼마나 배려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지, 감사할 일이 많은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유리감옥 속을 뛰쳐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따뜻한 대화와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기 위해서 유리감옥과의 결별을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나에게 무슨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익숙함에 안주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들레를 ‘후우’ 불면, 민들레 홀씨가 멀리멀리 퍼져서 꽃밭 가득 만개하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변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 씩 더 생각해본다면 올해 설날은 집집마다 대화소리로 가득한 따뜻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