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손녀 마리나 피카소가 유산으로 받은 피카소의 작품 1만여 점을 팔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일찍이 마리나는 회고록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에서 한 위대한 천재의 그늘 아래 고통 받는 평범한 가족의 비애를 고백하기도 했었다. 마리나는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러시아 디아겔로프 발레단의 젊은 무용수 출신의 올가 호흘로바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인 파울로에게서 태어난 딸. 그녀는 회고록에서 피카소를 ‘잔인하고 냉혹한 할아버지’라 기억했다.

피카소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인들에게서 받는 영감을 제각각의 색을 지닌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냈던 작가는 없었을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 가깝게 지낸 여성이 8명에 이르지만 결혼은 두 번만 했다고 한다. 파리 몽마르트에서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피카소는 ‘청색 시대’의 슬픔에서 벗어나 ‘장밋빛 시대’를 만끽하고, 전통적인 기법과 결별한데 이어 큐비즘을 실험하던 시기까지, 변신의 기점마다 늘 새로운 동반자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작품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올가’(1917년 작)는 피카소가 큐비즘 시기 이후 전통적 초상화 기법을 다시 사용했던 작품이다. 올가가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꼭 닮은 초상화를 요구했기에 정확한 데생, 모델의 전형적인 자세, 명암이 뚜렷한 볼륨 등을 묘사한 것이다. 피카소가 입체감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올가는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의자에 겹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피카소는 오랫동안 위대한 화가의 대명사였던 것 같다. 미술사가들의 평가대로 “항상 전통과의 단절과 혁신적인 작업을 통하여 예술의 세계를 신장”시켰던 피카소는 큐비즘, 파피에 콜레, 추상화, 조각, 도자기 등 한 작가의 성취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양식을 완전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피카소이기에 다만 ‘한 점의 그림’으로 그 심오한 예술적 행간을 다 채울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