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새해에도 다양한 화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한 편의 여파로 국제시장과 부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하니 부럽기도 하고, 덩달아 우리 동네 말바우시장을 지나는 발걸음도 정겨워진다. 나라가 가난하면 국민이 고생하는 법이어서 영화 속 사연들마다 가슴 아렸지만 특히 파독 간호사와 광부가 된 주인공 이야기는 눈물 났던 대목이다.

오십년 전, 1만8000 여 명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임금을 담보로 빌린 차관과 이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우리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가난한 부모형제를 위한 눈물겨운 헌신이기도 했다. 한국의 파독 광부나 간호사들 중에는 주경야독하면서 교수 의사 화가 등 전문 직업을 갖게 되는 등 독일 주류사회로 진입하기도 해 독일인들은 지금도 한국인들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다.

담양 출신인 재독작가 송현숙(1952∼ )도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어린 간호사 시절 밤 근무할 때마다 일기형식으로 그렸던 그림을 모아 함부르크 미대에 제출, 장학금까지 받으며 입학하게 된다. 작품 ‘열아홉 개의 획’(1991년작)은 수직으로 그어놓은 두 개의 기둥 위에 수평으로 굵은 선의 붓자욱을 남겨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다리’를 표현하고 있다. 두 기둥 사이에 팽팽하게 묶여있는 베다리는 외국 생활의 낯설음과 긴장감, 한국과 독일의 이질적인 두 문화를 살아온 작가의 삶을 은유적으로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화가는 86년 함부르크 미대 교수였던 남편 요헨 힐트먼과 함께 전남대에서 1년간 한국미술을 공부한다. 힐트먼교수는 다음 해에 전남대 교환교수로 머물면서 우리 민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답사한 기록을 담은 책 ‘미륵’을 출판해 운주사를 유럽에 널리 소개하기도 했다.

화가는 오랜 독일 생활에도 불구하고 고향 무월리에서 방금 올라온 듯 쪽진 생머리에 순박한 외모, 변치 않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오늘 한국인들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고향, 사투리, 무속, 관습이 먼 타국에 있는 그의 일상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