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내겐 꼭 필요한 것 같다. 타성이나 관성으로 일해오고, 마음속에서 눈금을 세며 건조하게 사람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익숙해진 일상 자체가 어느덧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보통 명사로 쓰이는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는 미술 분야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전성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중간 시기에 일어난 미술양식인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거장들의 출현 이후 작가들이 진정한 예술정신을 따르지 않고 단순히 기법(manner)만을 모방한 것을 두고 19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들이 경멸적으로 일컬은 개념이기도 하다.

당시 미켈란젤로의 후예들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나체상을 즐겨 다뤄온 미켈란젤로를 그대로 베껴 성경이야기를 그린 장면에 젊은 운동선수들 같은 우람한 체격의 나체 인물들을 가득 등장시켜 우스꽝스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매너리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파르미자니노(1503∼1540)의 ‘성모상’이 꼽힌다. 성경에 나오는 주제를 늘어진 비례와 꾸며진 포즈로 처리하였다는 평을 받는 이 작품은 화가가 성모를 자기 나름대로 우아하고 고상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나머지 성모의 목을 마치 백조처럼 길쭉하게 그려 ‘긴 목의 마돈나’라고도 불린다.

20세기에 이르러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를 연구해온 막스 드로르작과 ‘매너리즘 연구’등을 저술한 아놀드 하우저에 의해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의 쇠퇴가 아닌 새로운 미술 사조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완벽한 조화와 고전적인 균형의 미를 버린 매너리즘이 변형을 통해 미술의 혁신을 이루었다는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곰브리치 역시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파르미자니노는 선배 거장들이 이룩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엇인가 새롭고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창조하고자 모색했던, 아마도 최초의 ‘현대적인’ 미술가였을 것”이라고 주목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매너리즘도 혁신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