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합니다/감나무에 감이/바알간 불꽃이/수도 없이 불을 켜/천지가 환합니다/이 햇빛 저 햇빛/다 합해도/저렇게 환하겠습니까/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와도/따지 않고 놔둡니다/…내 마음도 저기/감나무로 달려가/환하게 환하게 열립니다” 〈정현종 작 ‘환합니다’중에서〉

얼마 전 모악산 금산사엘 다녀왔다. 광주와도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이름난 사찰이었음에도 그동안 인연이 없었는데 심란한 마음을 그곳에서 다잡곤 했다는 친구의 말이 꼭 가보고 싶게 했다.

그 친구는 어디서 잃어버린 마음을 찾았을까. 모든 이파리를 훌훌 털어버린 보리수나무 밑 돌무더기에 내 마음이 오래 머문다.

금산사에서, 후백제의 왕 견훤이 아들 신검의 반란으로 구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했다는 사연도 다시 꺼내어본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권력일랑 아들에게 줘버리고 이곳에서 평생 유폐되어도 좋았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산사이다. 미륵전 앞 붉은 감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는 감나무도 인상적이다. 부리 자국이 찍혀있는 감 두어 개는 까막까치의 밥이었으리라.

문인화가 시원 박태후(1955∼ )는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오고 몇 번이고 눈 내린 후에도 꽃처럼 매달려 있는 이즈음의 붉은 감을 잘 그린다. 곶감이 되어 가는 감을 그린 작품 ‘자연 속으로’는 구도나 소재 면에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해 평상시 우리가 보던 문인화의 개념과 크게 달라 보인다. 양지쪽에 걸어놓은 수많은 감들이 꽃처럼 등불처럼 화면을 환하게 채우고 있다.

20년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늦깎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는 원예고를 다니던 시절부터 나무를 심고 길러왔다. 현재 대지 1만3000㎡에 150종의 나무를 건사하고 있는 작가의 호는 아예 ‘감나무 밭( 園)’이다. 작가의 그림이 특별한 감동을 전하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스며들어 있어서 일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