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중 최대 쇼핑 대목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지난 주였고, 그 세일 기간이 연말까지 이어지면서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쇼핑족들도 덩달아 들썩이더니 눈 밝은 친구들은 비슷한 이름의 ‘블랙 데이’ 할인 행사에서 ‘득템’했다고 자랑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산다’는 행위는 곧 일상을 ‘살아가는’ 그 자체일 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추구하는 많은 욕망의 대상은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의해 교환가치가 매겨져 있어 소비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념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인 바바라 크루거(1945∼ )는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1987년 작)라는 작품으로 이렇게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꼬드겨지고 내몰리는 현대사회를 비판했다. 인간 이성을 존재의 근거로 정의한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지만 현대인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독특한 예술형식을 통해 기존 예술에 대한 비판과 사회제도적 권력에 항거해 왔다. 특히 사진을 찍기보다는 잡지와 브로슈어들로부터 사진을 골라내어 작업한 뒤 표어나 광고의 헤드라인과 같이 간략하면서 집중력 있는 글을 사진에 덧붙여 일순간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데카르트의 사유를 빌려 통렬한 비판적 패러디를 보여 주었던 작가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1982년), ‘당신의 편안함이 나의 침묵이다’(1984년),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1989년) 등 주요 작품을 발표했다. 작가의 작품 역시 빼어난 수사적 형상이나 힘 있는 메시지로 대중문화와 광고 이미지에서 빈번히 패러디되니 역설적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