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무의 무성한 이파리를 번뇌로 보았던 어느 카피라이터의 글을 접하고 봄, 여름의 숲을 좋아하는 나는 참으로 번뇌가 많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푸르던 잎이 화려하게 물들더니 어느덧 낙엽이 되어 쌓이기 시작한다. 나뭇잎 떨구듯이 이 번뇌도 저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이 예술과 부대끼고, 일터가 숲이 아름다운 중외공원 기슭에 있다 보니 남들 모두 떠나는 단풍구경을 몇 년째 가본 적 없어도 서운하지 않다. 어쩌면 오래 전 눈으로 본 불타듯 아름다운 지리산 단풍을 마음에 저장해 두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 때 보았던 풍경과 감동은 지금이라도 다시 재구성해 볼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한국 회화에서 눈으로 본 실경(實景)을 마음으로 그린 풍경화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로 발전시킨 화가가 겸재 정선(1676∼1759)이다.

겸재는 중국의 산천을 관념적으로 그렸던 데서 벗어나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그렸고, 자신의 인상적인 기억을 새로운 화법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당대에도 이미 화성(畵聖)으로 불리어졌다. 겸재의 ‘금강전도’(1734년 작)는 단풍잎이 다 져버린 겨울날의 개골선봉을 그린 작품이다. 한 마리 솔개 되어 일 만 이천 봉을 한 눈에 내려다본 것과 같은 부감법의 원형구도로 내금강의 전경을 묘사한 이 작품은 정선의 진경산수 화풍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는 임란과 호란의 후유증을 극복한 영조 시기로 경제가 안정되면서 금강산 유람 열풍이 불었고 정선의 금강산 그림의 인기도 절정이었다. 정선의 금강산도 1점에 남산 아래 집 한 채 값인 3천 냥을 호가하기도 했다 한다.

정선과 교우했던 선비화가 조영석은 문집 ‘관아재고’에서 “무엇보다 그의 그림에 대한 노력은 사용한 붓이 무덤을 이룰 만큼이나 되었고 스스로 새로운 화격을 창출하여…. 진정코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정선에서 출발하여 개벽한 것이다”고 찬탄하였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