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오로지 시(詩)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중략)’ (김광규 ‘생각과 사이’,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중에서

각자 자기 분야에 집중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할 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대학에 진학해 전공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한 분야의 틀에 가두는 경향이 있다. ‘난 인문학을 하는 사람, 넌 이공계를 전공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다. 대학에서도 그 틀에 맞춰 교육하고 전문화시킨다. 자신을 일정한 틀에 가두는 순간, 자기 전공 분야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다른 분야를 무시하기 십상이다. 다른 분야와 협업할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저 분야 사람들은 원래 그래’라는 편견이 작용한곤 한다. 이렇게 서로의 견고한 벽 사이에는 인간의 ‘감성적 요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인간의 감성은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의 기술 개발에서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스마트 기기의 발전으로 기계는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고, 연구·개발자들은 사용자가 기계와 더 직관적으로 상호작용 하도록 인간의 감성을 고려해 기계와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대중이 애플에 열광하는 것은 ‘차가운 기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세심한 인간미’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서 출발하는 것. 이 철학이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전공이라는 벽을 깨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교육받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계에서도 점차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감성적 요소’를 놓치고 세세한 기술 개발에만 집중해 유용성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IT 분야에서는 마우스와 키보드, 리모컨, 스크린 터치방식 등을 대체할 수 있는 매개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활발한 연구 중 하나가 카메라로 손가락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파악하는 기술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이라며 열을 올리는 연구자들과 달리 정작 사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호기심 있는 사용자들이 이 기술을 한두 번 정도 사용해보지만, 대부분 계속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기술이 마우스나 키보드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손을 장시간 들고 있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용자가 한 손가락으로만 클릭하며 오랜 시간 사용해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손을 더 크게 움직이며 힘들게 사용해야 한다. 즉, 이 기술은 ‘지속 가능성’과 ‘배려’라는 측면에서 사용자의 감성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감성이 풍부한 연구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손쉽게 스스로 훈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주변의 사소한 변화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화단에 핀 꽃이 무슨 색인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느낌인지 되뇌어 보고, 퇴근길에는 골목을 밝혀주는 조명이 어떤 색의 빛인지, 분위기는 어떠한지 세심히 살피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섬세한 관찰력을 기를 수 있다.

생물에 감정을 이입해 보는 것도 좋다. 말을 할 수 없는 생물의 감정이 어떨지 상상해 보고 그들의 시선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려고 노력하다보면, 한껏 충전된 감성으로 다른 사람의 감성까지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연구자가 되지 않을까.

김광규 시인의 시 ‘생각과 사이’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