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원하는 책을 당당하게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여자들에게 주어지기까지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렸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화첩에서도 “책을 통해 가정이라는 좁은 세계를, 상상력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세계와 맞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 순간 여자들은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가정에 대한 순종을 벗어던지고 독립적 자존심을 얻었기에 여자들은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책 읽는 ‘위험한’ 여자들이 많았던지 서양미술에서는 13세기부터 현재까지도 책 읽는 여자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해진다.

우리 한국 미술에서 책 읽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건하다. 17세기부터는 많은 여성들이 한글로 된 ‘규중요람’ ‘내훈’ ‘삼강행실’ 등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읽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까. 사대부가의 여성이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공부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자신보다 어린 남편을 도와 과거 급제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을 공부시키면서 스스로 자신의 학문세계를 이루기도 했던 조선 시대 여성의 유전자가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오늘날의 모성으로 진화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덕희(1685∼1766)의 풍속화 ‘독서하는 여인’은 여성 교육에 관한 이러한 모습을 반영하는 그림으로 짐작된다. 고운 햇볕 아래 단정한 차림새의 여인이 탁자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다. 무릎에 펼친 책을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는 모습이 지성적으로 보인다. 풍속화의 선구자였던 공재 윤두서의 아들답게 윤덕희는 자신이 속한 사대부 가정의 독서하는 여인을 직접 보고 묘사했을 것 같다.

현재 광주국립박물관에서는 ‘공재 윤두서 서거 3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가 그 전시를 행복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한 부분 윤덕희의 공로이다. 윤덕희가 부친의 화풍을 성실히 따름과 동시에 공재의 회화를 모아 화첩으로 정리하여 후세에 전한 위업이 그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